책 : 레볼루셔너리 로드
작가 : 리처드 예이츠
출판사 : 민음사
내가 요새 좋아하는 힙합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 그리고 편집자 ‘김민경'님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머니그라피의 비주류초대석을 너무 재밌게 보고 있는데 그들의 라이브를 보던 중 허키님이 민음사 TV에 나와서 독서클럽 영상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영상을 재밌게 보고 싶어서, 허키님과 김민경 님과 책에 대해 공감하고 싶어서 무작정 이 책을 샀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이 두 사람 때문에 샀다. 어쩌면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샀다고 할 수도 있는데 쓸데없는 굿즈를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이번 독후감은 그 영상에서도 많은 것을 느껴서 그 영상의 리뷰 형식으로 글을 써 보려 한다.
편집자 김민경 님께서 주인공에게 공감이 가지 않고 모린의 룸메이트 친구와 존 기빙스가 제일 공감이 갔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똑같았다. 프랭크, 에이프릴, 셉, 기빙스 부부 모두 공감이 되지 않았다.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듣는 척을 할 뿐이다. 그러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척, 사회를 비판하는 척, 논리적인 척, 문제를 잘 해결하는 어른인 척을 하는데 보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 누구도 솔직하지 못했다. 무작정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에이프릴이나, 떠나기 두려운데 일과 임신 핑계로 설득하는 프랭크. 여기서 나는 그들의 솔직한 마음을 거칠게 이야기하는 존 기빙스가 제일 좋았다. 물론 배려도 없고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그들에게 따끔하게 일침 하는 그 상황이 너무 속 시원했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영상에서도 이혼숙려캠프의 서장훈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에이프릴은 프랭크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프랭크를 핑곗거리로 파리행을 제안했다고 생각한다.
“아, 프랭크. 설마 화가나 작가 같은 사람만 자신만의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잘 들어요. 난 당신이 아무것도 안 하고 오 년을 허송세월하며 보내도 상관없어요. 그 오 년이 지나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 싶은 사람이 벽돌공이나 자동차 수리공이나 상선의 선원이라도 상관 안 해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하고 확실한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와는 아무 상관없어요. 지금 여기서는 당신의 본질 자체가 질식되고 있어요. 이런 식의 삶의 방식에서는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가 부정되고, 부정되고, 또 부정될 뿐이라고요.” 177p
에이프릴도 정말 솔직했다면 “그리고 저 또한 파리에 가서 일하고 싶어요. 다른 생활, 당신이 경험했던 파리를 느끼고 싶어요.”를 덧붙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생략하고 말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주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돈을 잘 벌고, 잘생겼고, 날씬하고, 옷을 잘 입고, 멋진 직업이 있고 그런 것을 다 떠나서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해 주는 것. 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유가 딱히 없는 것. 에이프릴은 그런 사랑을 말하고 있다. 5년을 허송세월 하며 보내도 상관없다는 그녀의 마음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하지만 자신 때문에 떠나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숨기며 “당신 때문에, 당신의 꿈을 찾으러 가는 거예요.”라고만 말하는 에이프릴의 파리행 제안은 프랭크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둘 다 맞는 이야기 같다.
사실 난 프랭크가 파리행 제안을 받았을 때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척했지만 처음 들어본, 받아본 진정한 사랑의 멘트(?)에 취해 파리에 가기로 성급하게 결정을 해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임신을 하기 전에도, 상사의 제안을 받기 전에도 프랭크는 불안했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는 것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아내의 사랑에 휩쓸려 꿈을 찾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믿고 파리행을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박혜진 편집자님의 말씀을 듣고 프랭크가 왜 파리에 가기 싫었는지를 명확하게 알았다.
“이 사람은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꿈을 찾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의 뿌리를 내리고 싶고, 자기 뿌리인 아버지가 못했던 일을 더 잘해 내는 모습으로 존재 증명을 하고 싶은 거예요.”
프랭크는 책의 초반부터 아버지에 대해서 언급을 많이 한다. 특히 아버지가 녹스 회사의 상사를 만나는 자리를 아주 자세하게, 길게 한다. 처음에는 이런 장면을 왜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하나 궁금했고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박혜진 편집자님의 의견을 듣고 엄청 중요한 장면임을 깨닫게 되었다. 프랭크는 아버지가 못했던 일을 해내는 것이 그의 스스로의 커다란 과제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스스로는 몰랐겠지만…) 프랭크가 진지하게 자신이 왜 파리에 가고 싶지 않은지 되물었다면, 그 이유는 명확하기에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에이프릴에게 자신은 꿈을 찾는 것보다 이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더라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더라면, 에이프릴은 납득을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녀는 본인이 가고 싶었기에 파리행 제안을 한 것이기도 하지만…
독서클럽의 영상에서는 소통의 부재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는데, 나는 서로의 소통보다도 스스로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에 소통을 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둘 다 자신의 마음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소통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닌가? 본인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애써 감춘 것인가? 조금 헷갈리긴 한다. 어쨌든 이 부분에서 허키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진 못 한 것이 당연하다는 말에 동의를 하고 싶다. 스스로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에 하워드 기빙스가 부인의 말을 듣지 않으려 보청기를 끄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이것은 회피해 버리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냥 회피한 것이다. 아마 박혜진 편집자님과 허키님은 그렇게 회피하는 성격이 아니고 서로 소통이 되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기에 이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부부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결혼생활을 원한다. 회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어쩌면 이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 속으로는 서로를 혐오하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고, 회피해 버리는 그런 관계는 나에게는 절대 상상할 수 없다. 김민경 편집자님이 보청기를 끄는 그런 행위가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거기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다. 아마 나중에 셉과 밀리 부부도 프랭크와 에이프릴만큼의 문제는 아니더라도 큰 결과를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렇게 회피하고, 참고, 괜찮은 척하는 것이 쌓여서 크게 터질 거라고 생각한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 왜 도대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심을 하지 않는가. 왜 그것을 아이가 생기고 나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인가. 그리고 첫 번째 아이가 실수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둘째를 낳았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생각일까. 나는 이때부터 벌써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를 싫어한 것 같다. 정말 멍청한 부부다. (화가 나는 것 같다.)
첫째 아이가 실수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둘째를 낳았고, 그다음 단계로서 합리적이고 또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교외에 집을 마련했다. 85p
(이 구절을 읽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조금 위험한 발언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낙태가 그렇게까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며 부도덕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부부의 아이로 태어나서 겪게 되는 일들은 당연한가? 이런 사람들에게 낙태가 부도덕하다고 주장하며 아이를 억지로 낳게 한다면, 그 아이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 부부에게 책임을 지게 할 것인가? 딱 봐도 아이들을 제대로 돌 볼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책임이라며 아이를 키우게 할 것인가? 그것이 도덕적인 것인가?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야 말로 그 아이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아이가 태어나서 겪게 될 고통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래도 우리들이 먼저 그 아이들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 부부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지원해 주고, 알려주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일 이상적이겠지만, 내 생각은 현실에서 모든 상황들을 이렇게 지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살 것이기 때문에,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부부 스스로가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판단되면 낙태를 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갑자기 조금 다른 길로 샌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에이프릴, 프랭크 부부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적인 상황은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 아이를 탓하는 게 아니다. 멍청한 부부를 탓하는 것이다.) 첫 번째 아이가 모든 문제점의 시작이 맞는 것 같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교외에서 권태롭게 사는 무의미한 삶을 증오하지만 정작 그들이 꿈꾼 ‘의미 있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사실 작품 안에 드러나지 않고 또 그것을 찾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감당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 두 사람이 생각한 무의미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영상의 멘트를 그대로 따왔다. 이보다 더 설명을 잘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어쨌든 이 두 사람이 생각한 무의미한 삶은 ‘수동적인 삶'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에 이끌려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 이것이 두 사람이 생각한 무의미한 삶이 아닐까.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는 의견에 조금 반대를 하고 싶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세상,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물론 나도 이 세상에 이끌리지 않고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이 사회는 너무 좁아서 답답하고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하지만 결국 우리는 살기 위해서는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부부가 파리로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회피라고 생각한다. 이 장소를 떠나면 그렇게 살 수 있다는 환상. 그 이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파리에 간다고 해서 자유로운 세상, 의미 있는 세상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그들이 사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도 그들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내 생각엔 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런데 파리로 간다고 없던 의미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무의미는 곧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부부는 조금 생각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나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에이프릴, 프랭크 부부는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그 요인을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찾아야 했다.
결국 이 책에서 또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가 아닐까. 그리고 상대방에게 솔직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깨닫게 해 준다. 아마 서로 조금만 솔직했다면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나는 얼마나 많이 조건을 따졌을까. 언젠가 나에게는 아무 조건도 필요 없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찬혁이 말하는 트루 러브를 언제 해 볼 수 있을까?ㅎ
그녀는 이제 침착했고 차분했다. 그동안 그녀가 늘 알고 있었던 사실, 부모님도, 클레어 숙모도, 프랭크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가르쳐 줄 필요가 없었던 사실, 정말 절대적으로 순수한 동기에서 해야만 하는 일, 진심으로 원해서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런 일은 언제나 오직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456p
에이프릴은 마지막에 무엇인가 깨달았던 것 같다. 끝은 너무 비극적이긴 하지만...
https://youtu.be/jWmy29bn1X0?si=giUvMrqtG4i5o_Z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