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더블 클릭
작가 : 알간 zㅣ
출판사 : 생각정원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봤으니 벌써 최소 5~6년은 봤다. 알간지는 ‘알고 보면 간단한 지식'이라는 말의 줄임말로 영어표현들을 재밌는 스토리와 함께 알려주는 채널이다. 처음에는 영어표현을 배우고 싶어서 보기 시작했지만 점차 스토리에 더 빠져들었다. 알간지는 대부분 토론을 할 수 있는 주제를 들고 왔고 마지막에는 내가 골똘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나의 대답’ 중 ‘편향'이라는 편이 바로 알간지의 영상을 보고 고민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알간지는 항상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만들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교양도 같이 쌓이니 이 채널을 보면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아했다. 아마 나는 이런 주제들로 토론할 사람과 장소를 원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알간지가 만들어준 것이다. 주제도 알려주고 토론할 거리도 주고 댓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알간지의 모든 편을 보았는데도 한참 동안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걱정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채널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얼마 전에 영상이 올라왔다. 바로 책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이 드디어 나온다는 영상이었다. 영상내용을 보니 에세이보다는 자기 계발서에 치우쳐진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모든 자기 계발서가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조금 걱정은 했지만 알간지라서 뭔가는 달라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주제들이 조금 익숙했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대부분 알간지가 유튜브 라이브를 할 때 구독자들이 고민하던 주제들이었다. 알간지에게 고민상담을 하던 바로 그 주제였다. 여기서부터 나는 벌써 알간지가 좋다. 라이브에서도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었지만 그것을 글로 담아서 더 자세하게, 예까지 들어서(기사, 논문, 뉴스)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대부분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하루에 수도 없이 하는 선택.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볼 지, 어떤 일부터 처리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무엇을 읽을지, 우리는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선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선택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할까.
최근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작가를 직업으로 하고 싶은데 글과 관련된 ‘책 편집자'를 할지 아니면 전공에 맞는 ‘문화재단 행정직'을 준비할지 선택해야 했다. 이 문제를 두고 일주일 동안 고민한 것 같다. 이미 내 안에 정답은 있었지만 쉽게 선택을 하지 못했다. 이 문제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간지는 이렇게 말했다.
한 수만 잘 두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 반대로 한 수 잘못 두면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굳이 우리 스스로 인생을 도박판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49p
The fantasy that one perfect move can change everything, or the fear that one wrong move can ruin it all-both mean you're gambling with your life. But why turn your life into a poker table at all?
여기서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과연 내 인생을 도박으로 만들어서 평생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었다. 이미 나는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망한다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그렇게 싫어하는 국악고등학교를 갔기 때문에,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대학교에 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 힘듦을 그때 겪지 않았다면 나중에 더 쉽게 무너지고 더 큰 힘듦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내리는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문화재단 행정직'을 선택했다. 이 글귀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빠르게 결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었다면 한 달을 고민했을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 내 인생을 도박판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수 잘 못 두어도 망하지 않아. 내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야.
‘좋은 선택'처럼 보이는 것들은 사실 좋은 결과가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다시 말해, ‘좋은 선택'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따라 뒤늦게 씌워지는 평가의 필터일 뿐이다. 51p
당신의 삶을 바꿀 ‘신의 한 수'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바로, 쫄지 않고 계속해서 선택하는 당신의 손끝에 있다. 원하는 방향을 찾고 그에 조준해 선택을 내려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57p
이번에 이 선택을 하게 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후회'다. 분명 내가 편집자의 길을 선택하든, 행정직의 길을 선택하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선택'과 ‘후회'는 결과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어차피 두 선택지 모두 다 후회할 것이라면 빨리 선택해서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분명 나는 후회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후회하나 저렇게 후회하나 똑같다. 그렇다고 막 선택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신중하게 선택하되,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도록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답'처럼 여기는 선택들은 대부분 사회 속에서 다수가 선호해 온 ‘안전한 선택지'에 불과하다. 61p
요즘 사람들이 불안을 겪는 이유 중에 제일 큰 것이 바로 이 ‘안전한 선택지'인 것 같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은 이 시기에 해야 하고 집을 사는… 모두가 목표로 두는 이 삶.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한 취급을 받는 이 세상. 나는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모두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답을 세상을 강요하고 있을까.
알간지가 말한 것처럼 물론 이 ‘안전한 선택지'는 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는 결정이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이 ‘안전한 선택지'가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다수가 맞다고 해서 소수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지금까지 이 ‘안전한 선택지'를 꿈꿔오며 이 선택지에서 내 삶이 멀어질 때마다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선택지에 목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 선택지를 강요해도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것이다. 비록 사회에서 도태되더라도 나만 행복하고 나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나의 최선이 되도록 만들면 그만이라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순간 내 마음에 들었으면 그만이라고. 77p
최근 친구와 러닝화를 사러 갔다. 친구는 지금까지 한 러닝화로 훈련과 대회를 모두 소화했다. 그러다 보니 신발의 수명이 다해서 계속 뛰기 위해서는 빨리 새 러닝화를 구매해야 했다. 그런데 친구가 사고 싶은 러닝화의 재고가 없거나 사이즈가 너무 커서 살 수가 없었다. 찾고 찾다가 친구의 발에 딱 맞는 러닝화를 하나 찾았는데 디자인이 그 친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봐도 디자인이 다른 브랜드보다 예쁘지 않았다. 여기서 내 친구는 선택해야만 했다. 착용감이 마음에 들지만 디자인이 예쁘지 않은 러닝화 vs 디자인은 예쁘지만 사이즈가 큰 러닝화. 나는 개인적으로 러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신발이라고 생각하고 건강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예쁘지는 않지만 사이즈가 맞는 러닝화를 추천했다. 그리고 이 친구도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둘 다 풀코스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 날 바로 결정해야 했다. 친구는 잠깐 고심하더니 금방 결정을 내렸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이즈가 맞고 착용감이 마음에 드는 러닝화로 선택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신발을 꾸밀 수 있는 것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신발에 색칠할 수 있는 펜이라던가 알록달록한 신발끈들을 찾아보았다. 친구는 러닝화를 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예쁘게 꾸미면 되지 뭐. 이거 봐 끈 색깔 엄청 많아~ 핑크색으로 해야지~”
그때 나는 이 친구를 내가 왜 좋아하는지 한 번 더 느꼈다. 내 친구는 비록 러닝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지 않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예쁘게 꾸미려고 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 모습들 때문에 내가 이 친구를 좋아했더랬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바로 책에 이런 글귀가 나타났다.
숨기고 도려내고 싶은 내 구린 모습에 아주 화려하고 귀엽고 예쁜 스티커를 붙여주자. 115p
Put a bright, lovely sticker on the parts of yourself you wish to hide.
대상만 다를 뿐 내 친구의 마인드와 알간지의 마인드가 똑같았다. 나에게 구린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회피하고 부정하는 것보다 그 위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주기. 어쩔 수 없는 나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귀여운 스티커를 붙이기. 친구야 고마워. 이런 좋은 태도를 알려줘서.
삶을 바꾸고 싶다면,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그 일을 하라. 138p
If you wish to change your life, do the very thing you fear the most.
책에서 이 문장이 나에게 제일 크게 와닿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한번 내 삶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을 알게 된 순간 내가 대학교 때 어떻게 삶이 바뀌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정말 힘들어하는데 러닝 동아리에 혼자 지원한 것.
두 번째, 반장, 심지어 조장도 해본 적이 없으면서 학회장을 한 것.
세 번째,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브런치에 올린 것.
내가 생각했던 제일 두려워하는 일들을 대학교 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무슨 자신감과 용기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자기 계발서에 나와있던 ‘행동해라'라는 문구에 빠져서 그랬지 않았을까. 솔직히 자기 계발서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때만큼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역시 책이 짱이다. 어쨌든 잊고 있던 이 말.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을 해라. 그리고 알간지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설명해 준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실행에 옮기는 궁극의 이유는 그 경험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나'라는 확신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다. 글로 보면 그저 멋있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직접 해보자. 꼭 해봐야만 안다. 그리고 기억하자. 이 과정에서 명심할 것은 내가 무언가를 얼마나 잘 해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를 두고 유튜브 영상에서 “합법적 좆밥이 될 것을 허용한다.”라고 표현했다. 당신은 모든 걸 잘 해낼 필요가 없다. ‘나에게 든든한 나'를 자각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잘'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 도전으로 정말 얻고자 하는 것은 뭐든 잘하는 ‘나'라는 인식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위해 행동할 만큼 강하다는 자각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스스로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142p
결국 나는 위의 세 가지 두려워하는 행동들을 통해서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리더십이 있고 누군가에게 솔직한 나를 보여줄 용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의 내가 나를 바꾸기 위해서 그렇게 힘든 것을 시도했다는 믿음과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위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나는 이렇게나 노력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두려워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해 나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국악고등학교에 가고 수원대학교에 온 것이 처음에는 싫었다. 나에게 큰 시련이 닥친 것 같았다.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나름 성과를 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내가 수원대학교에 온 것에 감사하다. 아마 인서울을 했더라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나 그대로 다녔을 것이다. 어쩌면 살도 못 빼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시련이라고 생각했던 그 고통이 다 뜻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헤맬지는 알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필요한 만큼 헤매는 거겠지.”223p
We don't know how long we'll wander to reach our goal. When lost, simply say “Maybe I'm wandering as long as I need to.”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내가 만약 또다시 헤매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그만큼 배우는 것이 있을 테니까. 이제 나는 어떤 시련이 와도 버틸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보다도 내게 남는 것이 있을 거라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나도 한 번 말해본다. “내가 필요한 만큼 헤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