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노수연

책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 임홍빈

출판사 : 문학사상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달리기 인류'라는 책을 읽고 달리기에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반응도 꽤 좋아서(처음으로 하루에 조회수가 100을 넘었다.) 더 잘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달리기를 관련한 소재를 더 찾고 싶어서 달리기와 관련된 글을 읽어야 하나 싶은 참에 사촌 언니가 이 책을 빌려주었다. 사실 이 책과 ‘달리기 인류' 중에서 무엇을 먼저 읽을지 고민했었다. ‘인류'라는 단어에 꽂혀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고 다시 이 책이 궁금해졌을 때쯤에 우연한(?) 계기로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사촌언니는 대학원생인데 달리기를 좋아하시는 교수님께서 책을 선물해주셨다고 한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언니는 바로 빌려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달리기와 소설 사이

이 책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오로지 달리기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소설가가 된 이야기에 대해서도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생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그의 인생을 차지하는 부분에서 달리기가 컸던 것이 아닐까.(마치 나처럼)


이 책에서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달리기 인류 생존기'라는 브런치북에서 쓰려고 한다. 이 책 제목부터가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독후감에서는 달리기에 관련된 느낀 점보다 그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달리기에 관련된 느낀 점들이 궁금한 사람들은 ‘달리기 인류 생존기'를 읽어주시기 바라요.)



공부

내가 공부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소정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든 마친 다음, 소위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63p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1등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승부욕이 없다고 해야 할까나. 공부를 못 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을 뿐이지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공부하고 싶은 과목만 하는 편이었다. 특히 과학이 그랬다. 보통 중간고사는 자연과학을 배우고 기말고사는 물리, 화학 같은 분야를 배웠는데 항상 자연과학을 배우는 단원에서만 성적이 높았다. 내 기억으로 자연과학은 항상 80~90점을 유지했지만 물리, 화학에서는 60점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도 나는 하고 싶은 공부만 했던 것 같다.


이 성향은 대학을 와서 빛을 바랐다. 대학의 경우 전공을 빼고는 모든 수업을 하고 싶은 수업으로만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시간표를 짤 때 정말 신이 났다. 며칠을 걸쳐서 듣고 싶은 교양들을 힘들게 찾았고 10과목 중 1과목 빼고는 모두 A+을 받았다. 음대는 교양을 4개만 들으면 되지만 나는 6개나 더 들었다. 졸업요건을 이미 채운 학점이었는데도 말이다. 등록금이 아까워서라기보다 이제야 공부의 흥미를 찾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듣고 싶었던 수업을 못 들은 게 너무 아쉽다. 만약 1년 정도 교양만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엄청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수업을 들을 자신이 있다. 지금은 배우고 싶은 것을 책과 유튜브로 공부하고 있지만 직접 강의를 듣는 것 과는 느낌이 다르다. 한계가 있다. 이 재미를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일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것일까.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대학교 때가 제일 행복했다.)



글을 쓰는 근육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쓰는 작업이 육체노동이라고 말한다. 나도 장편소설을 쓰지는 않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글을 2~3시간 몰입해 쓰고 나면 기진맥진한 몸을 발견할 수 있다.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금세 배고파진다. 작가는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집중을 할 수 있는 근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달리기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베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122p


나도 최대한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한 번 쓸 때 2~3시간은 쓰고 있다. 계속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4~5시간 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때까지 되지 않을까. 그나마 내가 지금 2~3시간이 어렵지 않은 이유는 2가지 인 것 같다. 첫 번째는 내가 악기를 연습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악기도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육체노동이다. 특히 나는 관악기라서 계속해서 호흡을 하고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두 번째는 달리기다. 나는 달리기로 최대 3시간 46분까지 달려봤다. 숨이 차지 않는 속도로, 올리고 싶은 것을 참고 3시간을 넘게 달리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향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무엇인가가 크게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127p



달리기는 모두의 스포츠가 아니다.

나는 한동안 사람들에게 러닝을 전도하고 다녔다. 러닝이 내 인생을 바꿔주었다며 자랑하고 다닌 셈이다. 이 책을 빌려준 사촌 언니의 경우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언니의 남자친구가 하도 러닝을 하고 다녀서 궁금해진 언니는 달리기를 몇 번 했지만 나만큼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몇 번 정도 하면 달리기가 재밌다는 걸 알 텐데 왜 모르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73p를 읽고 찔렸다.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73p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주위의 누군가에게 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달리는 것은 근사한 것이니까 모두 함께 달립시다” 같은 말은 되도록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만약 긴 거리를 달리는 것에 흥미가 있다면, 그냥 놔둬도 그 사람은 언젠가 스스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고, 흥미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권한다고 해도 허사일 것이다. 마라톤은 만인을 위한 스포츠는 아니다. 소설가가 만인을 위한 직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73p


생각해 보니 나도 달리기를 누군가가 시켜서 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그저 공복 유산소가 다이어트에 제일 좋다는 말에 무작정 나가서 뛰었다. 내가 다른 유산소 운동을 선택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선택했고 경험해 본 뒤 좋아서 다이어트와 상관없이 매일 뛰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나보고 달리기를 하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 그저 처음 선택한 운동이 나와 잘 맞았던 것이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달리기'가 최고의 운동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에게 맞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와 내가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러닝이 최고라며 떠들고 다녔지만 입을 다물고 다닐 예정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에게 맞는 운동이, 직업이, 취미가 있을 테니까. 따로 글로 써놓기도 했는데, ‘잘하는 것이 재능이 아니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밌어서 계속하는 것이 재능이다.’(머니그라피에서 허키 시바세키와 김간지가 한 말이다.) 나는 이 정도면 러닝과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편인 것 같다. 원래 잘 질려서 음악도 다양하게 듣고 여러 취향들을 찍먹 하는 스타일인데 달리기와 글쓰기는 비교적 오랫동안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계속하니까.


+단지 달리기를 하지 않는 내 주변 사람들이 러닝을 할 때의 그 기분 좋음(러너스 하이? 엔도르핀? 도파민?)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쉽다. 빨리 그들에게 잘 맞는 운동을 찾아서 그 기분 좋음을 느끼길 기도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228p



나를 발견하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트라이애슬론 경기를 통해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에 대해서 배운다. 여기서 또 내면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어쩌면 정말 단 하나의 진리는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것이 아닐까. 요즘 어떤 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콘텐츠를 보든 하는 말이 다 똑같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내 감정이 어떤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무엇에 더 끌리는지 알아보고 있다. 난 이 문제가 내 인생에서 제일 큰 과제 같다.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나는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지 알아보는 중이다. 그래서 글쓰기와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글쓰기는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달리기는 내 감정과 육체를 조절하는 힘을 길러준다.


그러나 틀림없이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는 것이다. 발가벗고 거울 앞에 오랜 시간 바라보며 서 있는다 해도 인간의 속까지는 비춰주지 않는다. 246p



나도 내 묘비에 이렇게 적혔으면 좋겠다.


노수연

작가 그리고 러너

2002~20**

나도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번 풀코스를 걷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