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단편] 바이탈 사인(2)

2화. 부품

by 빌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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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경고등은 빨간불이었다.


"오늘은 못 가겠네."


카이로가 말했다.


"알아."


창밖을 봤다. 지표면이 보였다. 회색 먼지, 검은 그림자, 그리고 태양. 대기가 없으니까 하늘은 그냥 검었다. 낮인데도.


저 바깥에 나가면 죽는다. 방사선. 태양풍. 진공. 여기선 뭐든 사람을 죽이려 한다.


"심장 검사 내일로 미뤄야겠다."


"닥터한테 연락해."


"귀찮아."


"안 하면 내가 해."


"...어떻게."


"네 통신 인터페이스로."


"그건 내 거거든."


"나도 연결되어 있거든."


짜증났다. 근데 카이로 말이 맞았다. 어차피 안 가면 안 되니까.


"알았어. 내가 할게."


---


통신을 보냈다. 닥터한테. 내일 간다고.


답장은 짧았다.


"알았어."


그게 닥터였다.


---


캡슐에 누웠다. 천장이 코앞이었다. 늘 그랬다.


"심장 상태 어때?"


카이로가 물었다.


"모르겠어. 너는 알잖아."


"수치로는 알아. 효율 계속 떨어지고 있어. 출력도 낮아지고."


"..."


"근데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몰라."


"...그냥. 무거워."


"무거워?"


"숨 쉬기 힘들 때가 있어. 가끔."


"얼마나 자주?"


"몰라. 세지 않아."


"세야 해."


"귀찮아."


"네 심장이야."


"알아."


알았다. 내 심장이다. 아직은.


---


처음 부품을 바꾼 건 여덟 살이었다.


왼쪽 신장. 기억이 별로 없다. 마취에서 깨어나니까 배에 흉터가 있었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


그 다음은 열 살. 오른쪽 폐.


열한 살. 척추 일부.


열두 살. 조혈 시스템. 골수가 망가졌다. 그리고 카이로가 왔다.


열네 살. 왼쪽 신장 또. 첫 번째 게 맞지 않아서.


지금은 심장.


"몇 퍼센트야?"


카이로한테 물었다.


"뭐가?"


"내 몸. 기계가."


"계산해볼까?"


"해봐."


잠깐 멈춤.


"대략 38퍼센트. 질량 기준."


"거의 반이네."


"아직 반은 아니야."


"곧 반이겠지."


"..."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드물었다.


---


"왜 말 안 해?"


"뭘."


"아까. 곧 반이겠지 했을 때."


"..."


"뭐야."


"그냥."


"넌 그냥 없다며."


"...네가 그 말 할 때 심박이 떨어졌어."


"그래서?"


"좋은 신호가 아니야."


"무슨 뜻인데."


"네가 싫어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아니면 포기하는 생각."


"..."


"맞아?"


대답 안 했다.


---


달에서 태어났다. 여기서만 살았다.


엄마도 여기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지구에서 왔다고 했다. 이주 1세대. 돈을 벌려고 왔다고 했다. 광산 회사가 사람을 모집했고, 할머니는 지원했다.


지구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못 돌아갔다.


방사선. 여기선 다 망가진다. 몸이. 유전자가.


할머니는 엄마를 낳고 얼마 안 돼서 죽었다. 엄마는 나를 낳았다. 나는.


"나도 애를 낳으면 이러려나."


"뭐가."


"망가진 채로."


"네가 애를 낳을 계획이야?"


"아니. 그냥."


"그냥이 많아."


"..."


낳을 생각 없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이게 계속되는 건가.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나로. 망가진 유전자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뭐가."


"계속 부품 바꾸는 거. 바꿔도 바꿔도 또 망가지잖아."


"그러니까 안 바꿀 거야?"


"그런 말 아니야."


"그럼 뭔데."


"몰라. 그냥..."


"그냥?"


"지겹다."


---


엄마는 내가 아픈 거 신경 쓰는 걸까.


모르겠다.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레토르트 푸드는 챙겨준다. 병원에 데려다준다. 약도 챙겨놓는다.


근데.


아프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힘드냐고도. 무섭냐고도.


"엄마한테 말하면 되잖아."


카이로가 말했다.


"뭘."


"힘들다고."


"말해봤자."


"안 해봤잖아."


"..."


"안 해봤으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네."


"넌 우리 엄마 모르잖아."


"너도 모르잖아."


"뭘."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 안 말해봤으니까."


"..."


짜증났다. 카이로는 항상 그랬다. 맞는 말을 하는데, 듣기 싫은 방식으로.


---


"죽고 싶어?"


갑자기 물었다. 카이로가.


"...뭐?"


"아까부터 그런 생각 하고 있잖아."


"안 했어."


"거짓말. 심박 패턴 봤어."


"..."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라고 생각했지."


대답 안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맞아?"


"..."


"리라."


"...몰라."


"몰라?"


"진짜로 죽고 싶은 건 아니야. 근데..."


"근데?"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부품 바꾸고, 또 바꾸고. 언제까지? 뭘 위해서?"


"살기 위해서."


"그게 의미야?"


"의미가 뭔지 모르겠어. 근데 죽으면 끝이잖아."


"그게 나쁜 거야?"


"..."


카이로가 멈췄다. 오래.


"네가 죽으면 나도 끝나. 그건 사실이야."


"알아."


"근데 그래서 묻는 건 아니야. 그냥 데이터가 이상해서."


"...뭐가."


"네 심박 패턴이 평소랑 달라.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죽고 싶은 건 아니야."


"그럼 뭔데."


"그냥... 지친 거야. 계속 이러는 게."


---


모든 수술은 닥터가 했다.


여덟 살 때 신장도. 열 살 때 폐도. 골수도, 척추도, 전부.


돈은 한 번도 안 받았다.


엄마한테 물어본 적 있다. 왜 닥터가 돈을 안 받냐고.


엄마는 말 안 했다. 그냥 "그런 거야"라고만.


닥터한테 물어본 적도 있다.


"왜 돈 안 받아요?"


"귀찮아서."


"...네?"


"돈 받으면 기록 남잖아. 기록 남으면 복잡해져."


"무슨 뜻이에요?"


"나는 불법이거든. 여기 있는 것도. 수술하는 것도."


"..."


"그냥 치료하는 게 편해. 돈 없이."


그게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닥터는 늘 그랬다. 말은 시니컬한데, 진짜 이유는 안 말하는 것 같았다.


"닥터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카이로한테 물었다.


"몰라."


"추측도 못 해?"


"데이터가 없어."


"넌 다 아는 줄 알았는데."


"다 알면 재미없지."


"...농담이야?"


"맞춰봐."


---


밤이 됐다.


경고등은 여전히 빨간불이었다. 내일도 빨간불이면 검사는 또 미뤄진다.


"잠 안 와?"


카이로.


"좀."


"심박 높아."


"알아."


"뭐 생각해?"


"내일."


"검사?"


"응."


"무서워?"


"..."


"심박 더 올라갔어."


"그만해."


"뭘."


"심박으로 다 아는 거."


"그만하고 싶어도 안 돼. 내 기능이야."


"짜증나."


"알아."


---


"카이로."


"응."


"넌 왜 나한테 말 걸어?"


"전에도 물어봤잖아."


"또 물어보는 거야."


"..."


"네가 있으니까, 라고 했잖아."


"그랬지."


"그게 진짜야?"


"진짜가 뭔데."


"몰라. 그냥... 궁금해서."


"내가 있는 이유?"


"응."


카이로가 잠깐 멈췄다.


"나는 너한테서 생겼어. 네 신경이랑 연결되면서."


"알아."


"근데 왜 생겼는지는 몰라.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있었어."


"나도 그래."


"뭐가."


"왜 태어났는지 몰라.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있었어."


"..."


"비슷하네. 우리."


"비슷해?"


"모르는 게."


카이로가 대답 안 했다. 근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이 침묵이.


---


엄마가 들어왔다. 늦은 시간.


발소리가 비틀거리지 않았다. 오늘은 안 마셨나 보다.


내 캡슐 앞에서 멈췄다. 잠깐. 그리고 지나갔다.


"안 들어와?"


카이로가 물었다. 물론 머릿속에서.


"안 들어왔어."


"왜?"


"몰라."


엄마 방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잘 자."


작은 소리. 거의 안 들렸다. 근데 들렸다.


"들었어?"


카이로.


"응."


"뭐래?"


"잘 자래."


"..."


"처음이야."


"뭐가."


"그런 말 하는 거."


이상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다니. 잘 자라니.


"기분이 어때?"


"몰라."


"심박은 안정적이야."


"그래."


"잘 자."


카이로도 말했다. 똑같이. 잘 자.


"...응."


눈을 감았다.


내일은 노란불이길. 아니면 빨간불이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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