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 : 삭제
수연 : 삭제
새벽 1시.
아파트 전체가 가라앉아 있었다. 위층에서도, 아래층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창밖의 도시는 불빛만 남기고 잠들어 있었다. 가로등이 커튼 사이로 희미한 줄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다.
지수가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숨소리가 규칙적이고 느렸다. 이불이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고, 한쪽 손이 내가 누워 있던 자리를 향해 뻗어 있었다. 나만 잠들 수 없었다.
어제 일이 자꾸 떠올랐다.
엄마의 손이 내 등을 쓸어내리다가 멈추던 순간. 아버지가 끝내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것.
'죽는 것보단 낫지 않으냐.'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불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지수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을 옮겼다. 맨발이 차가운 마루에 닿았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나갔다. 거실 창으로 도시의 불빛이 들어와 가구들의 윤곽을 희미하게 그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았다. 쿠션이 눌리며 가죽이 삐걱거렸다.
허공에 홀로그램 창을 띄웠다. 푸르스름한 빛이 어둠 속에 너울거렸다. 얼굴 위로 파란 빛이 일렁였다.
[K-증권 인사팀: 김준우 과장 승진 발령 통지서]
3년 전이었다. 최연소 과장 승진. 아버지에게 전화했을 때 "그래, 역시 우리 아들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밤 지수와 와인을 마시며 축하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홀로그램 빛이 손끝에서 흔들렸다.
삭제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삭제하시겠습니까?'
확인을 눌렀다. 데이터가 흩어져 사라졌다. 빛의 입자가 퍼지다가 꺼졌다. 거실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다음 창. 다음 창. 하나씩 지웠다. 동창회 단톡방. 회사 메일. 피트니스 앱. 지울 때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 멈출 수 없었다. 어젯밤 서재에서 책을 버렸을 때처럼.
홀로그램의 빛이 거실 벽에 반사되었다. 창이 하나 사라질 때마다 벽 위의 빛이 줄어들었다.
마지막 파일 앞에서 손이 멈췄다.
[Wedding_photo_final.jpg]
열어보았다.
턱시도를 입은 내가 웃고 있었다. 옆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지수.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넓은 어깨. 단단한 턱선. 지수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 배경에 하얀 장미 아치가 보였다. 햇살이 두 사람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두 사람 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홀로그램 속의 내가 웃고 있었다. 소파 위의 내가 울고 있었다.
천천히 손바닥으로 화면을 쓸어내려 닫았다. 삭제하지는 못했다.
모든 창을 닫았다. 거실이 다시 어둠에 잠겼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가구의 윤곽이 천천히 되돌아왔다.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냉장고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
"깼어?"
내 목소리가 푸석했다.
지수가 다가왔다. 잠옷 차림이었다.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눌려 있었다. 소파 끝에 앉았다. 내 발끝과 지수의 무릎 사이에 쿠션 하나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어제... 부모님 말씀 생각하고 있었어?"
"응."
고개를 끄덕였다.
"100억... 참 비현실적인 숫자지?"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보였다. 매니큐어가 가로등 빛에 아주 약하게 빛났다.
"밤새 생각해봤어. 돈도 없고, 성공률도 60%고, 뇌가 이미 변하고 있다고 했잖아."
숨을 쉬었다. 깊게. 가슴이 들렸다가 내려갔다.
"김준우가 다시 세상에 나올 확률은 0이야.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 오히려 발버둥이 멈추더라."
지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나를 묻어줘. 김준우를.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못하게."
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묻는 게 아니야."
내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지수의 손이 따뜻했다. 내 손은 차가웠다.
"다시 태어나는 거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지수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름 생각해 놨어. 딸이 태어나면 주려고 했던 이름인데... 수연. 어때?"
수연.
"秀妍. 빼어날 수, 고울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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