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 이사회
지수 : 이사회
숙소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거실에 있었다.
유진 언니는 소파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고, 수연은 창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둘 다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됐어?"
유진 언니가 물었다.
***
나는 소파에 앉았다.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렸다. 두 시간 전의 일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칼릭스 본사 28층. 통유리 너머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의실.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서류가 놓여 있었고, 맞은편에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마이클 강이 아니었다. 백발의 노인. 법무팀 총괄이라고 했다.
"은지수 씨. 부친의 주식 가압류 건이 해제되었습니다."
그가 서류를 밀어왔을 때, 나는 함정을 의심했다. 너무 쉬웠다. 아무 조건 없이?
"윌리엄의 횡령이 확정되면서 그쪽 지분은 의결권 없는 주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현재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으로, 은지수 씨가 최대주주십니다."
호의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법적 결과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은 달랐다.
"이사회에서 은지수 씨의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빈 자리가 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사무적이고 건조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관찰하는 눈이었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는.
나는 서류를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만 말하고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등 뒤로 시선이 느껴졌다.
***
"이사회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어."
침묵이 흘렀다.
"뭐?"
유진 언니가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주식 가압류 건도 해결됐대. 윌리엄 횡령 건으로 그 가족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횡령액을 처리하고 나머지는 의결권 없는 주식으로 전환됐다고."
서류 봉투를 밀었다. 유진 언니가 집어 들었다. 안을 확인했다. 법원 도장이 찍힌 서류들.
"이젠 내가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어."
"진짜네."
언니가 중얼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받아들여."
"언니?"
유진 언니가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가로 걸어가며 말했다.
"생각해 봐. 지금 우리는 적의 영토 안에 있어. 정보는 없고, 카드도 없어. 그런데 적이 스스로 문을 열어준 거야."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잖아요."
"당연히 함정이지."
언니가 돌아보았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문제는 그 함정이 뭔지 모른다는 거야. 모르면 알아내야 해. 밖에서 추측하는 것보다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게 빨라."
손가락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이사회에 들어가면 재무제표를 볼 수 있어. 연구 예산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지. 박사님의 원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생길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열기가 서렸다. T-오가넬 억제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원본 데이터. 그걸 위해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다.
"하지만 왜 이렇게 쉽게 주는 건지가 걸려. 너무 편하게 열어주는 문은 닫힐 때도 빠르거든."
언니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은 들어가는 게 맞아. 우리한테 시간이 없으니까."
논리적인 판단이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안 돼."
수연이었다. 창가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왜?"
유진 언니가 물었다.
"위험해."
"뭐가 위험한데?"
"그냥... 느낌이 안 좋아."
수연의 얼굴이 이상했다. 핏기가 빠져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고, 오른손이 자기 뒷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거기가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느낌?"
유진 언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느낌으로 판단할 상황이 아니야.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정보야. 적이 뭘 원하는지,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그래도..."
"이유가 뭔데?"
언니가 한 걸음 다가갔다. 수연이 뒷걸음질 쳤다.
"왜 그렇게 반대해? 뭔가 이유가 있어?"
"없어. 그냥..."
수연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 숨기고 있었다. 확실했다.
"수연아."
내가 불렀다. 수연이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젖어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거렸다.
"없어."
결국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걱정돼서 그래. 언니가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게."
"일단 생각해볼게."
내가 말했다. 유진 언니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 먼저 잘게."
유진 언니가 일어섰다.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거실에 나와 수연만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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