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사막이 나에게 알려 준 것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꿈같았던 사하라 사막에서 귀국하고 몸을 추스를 충분한 시간도 없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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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환자들 사이로 끊임없이 울려 대는 수많은 의료기기들의 알람 소리가 내가 다시 중환자실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사막 마라톤’을 마치고 돌아오니 한국에서는 또다시 병원의 ‘근무 마라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2주간의 휴가 스케줄을 만들면서 연차와 쉬는 날을 몰아서 다 써 버렸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빡빡한 근무표 속에서 근무 강행군을 이어 나갔다. 사막을 다녀왔다고 해서 특별하게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무릎, 발목, 어깨 등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출근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사막 마라톤의 후폭풍으로 온몸 구석구석 어느 곳 하나 멀쩡한 곳은 없었지만 다행히도 큰 부상이 아니었기에 회복이 빨랐다.


사막 마라톤에 대해 누군가는 쓸데없이 돈까지 주고 사서 고생을 하고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사막 마라톤을 꿈꾸고 선택했던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을 극한의 상황에 내던져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상황은 자신을 임계점까지 끌어올려 주고, 스스로가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평상시에는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사막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는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비가 내린 후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사막 마라톤은 나를 더 단단하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뒤돌아보면 내가 사막에서 싸웠던 것은 살인적인 폭염이나 인간을 한계까지 내모는 육체적 고통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걸고 포기하지 말자고 다독이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내딛었다. 사막은 온연히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내면의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사막에서는 자연스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됐다. 주변의 다른 선수들을 의식해서 내 페이스를 잃었다면 나는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가 가진 페이스대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결승선 앞에서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나 어디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실을 알려 준 것은 사막이었다.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고 커다란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주일간 250km의 장거리를 달리고 받은 메달이라 그런지 굉장히 크고 묵직했다. 지금도 가끔 사막이 그리울 때면 내 방에 있는 메달을 꺼내 보곤 한다. 완주 메달을 보고 있으면 다시금 작열하는 태양과 끊임없이 모래언덕이 펼쳐져 있는 사막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의 열정과 끈기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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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막 마라톤에서 얻은 것은 단지 완주 메달만은 아니었다. 함께 일주일간을 동고동락했던 한국팀이 없었다면 사막은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한 곳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한 명이 처지면 서로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어 주며 서로를 챙겼기에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한국팀은 전원이 완주할 수 있었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 준다고 한다. 그때는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막은 인간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기나긴 일주일간의 대회에서 서로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도 혼자만 잘해 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본인도 힘든 상황에서 항상 한국팀은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는 모습이 가득했다. 나는 사막에서 메달보다 더 값진 평생 함께할 소중한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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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50km의 사막을 일주일 동안 한 번에 달려야 했다면 나는 결코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막 마라톤에서의 CP는 단순히 식수를 공급하고 휴식을 위한 그늘이 있는 작은 천막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달콤한 휴식처이자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던 고마운 존재였다. 10km만 더 가면 또 다른 CP가 나타날 것이라는 목표와 희망으로 250km를 달리며 6박 7일을 버텨 냈다. 문득 인생이라는 거대한 마라톤을 잘 달리기 위해서도 CP 같은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내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도록 해 주는 CP는 무엇일까? 만약 나만의 인생 CP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완주하기 위해 내 인생의 CP는 무엇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무 마라톤을 달리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무릎의 통증도, 근육통도 이제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프리카의 드넓은 사막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꿈이었던 모든 것들은 현실이 되었고 사막에서의 기억들은 이제 나에게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나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빨리 경기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그 시간들이 그립다고 하면 믿을까? 80km를 무박으로 쉬지 않고 달리는 롱데이 날, 너무 힘들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바라본 밤하늘의 쏟아지는 듯한 별들, 끊임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의 향연, 밥을 먹을 때마다 입에서 사각거리던 모래의 느낌, 아마 나는 그 기억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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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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