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내일까지, 아니 ‘당장 오늘 하루를 버텨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오늘이 기나긴 250km의 대장정이 마무리 되는 날이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회의 마지막 날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오늘 달려야 하는 거리는 총 250km 중 마지막으로 남은 10km 남짓이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달려왔던 기나긴 거리를 생각해 보면 네발로 기어서라도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거리였다. 사실상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간다는 기쁨에 이미 축제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다들 완주를 눈앞에 두고 설레는 표정을 쉽게 감출 수 없는 듯했다. 드디어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자 지난 일주일간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악착같이 버텨 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경기가 시작되고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은 처음부터 걷는 선수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걷는 이유는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남은 사막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도 조바심을 내지 않고 천천히 사막을 느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몸 상태는 지난 일주일간의 경기로 인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지만 마음만은 가볍게 느껴졌다. 매일을 ‘제발 빨리 오늘만 무사히 끝나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하며 보냈는데 막상 마지막 날이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지막 날의 고요한 사막에는 어째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눈을 감고 크게 사막의 공기를 폐 안에 가득 채웠다. 아마 언젠가 사무치도록 이곳이 그리워지는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달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멀리 모래언덕 뒤 결승선에서 울려 퍼지는 선수들의 환호성이 들리자 어디선가 다시금 달릴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이미 결승선은 코앞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내어 결승선을 힘껏 향해 달려나갔다. 이미 도착한 선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많은 격려와 환호를 받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침내 그렇게도 꿈꿔 왔던 사막 마라톤의 전 구간을 완주해 낸 것이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거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성취감과 기쁨이 몰려왔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해냈다. 길고도 길었던 일주일간의 250km 사막 레이스를 63시간 15분 50초 만에 완주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들은 모두가 완주의 기쁨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완주의 기쁨을 나누는 선수들도 있었다. 국적은 모두 달랐지만 6박 7일간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은 모두 사막이라는 연결 고리로 하나가 돼 있었다. 또한 누구보다 고생했던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에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을 담아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들도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위해 모두 서서 기다리며 축하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사막은 꼴등이 1등보다 더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는 재밌는 곳이었다. 항상 1등만을 원하고 축하해 주는 우리 사회에서는 겪어 보기 힘든 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에 들어올 때가 되면 모두들 쉬고 있던 텐트 밖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들어온 선수를 격렬하게 환호하며 축하해 줬다. 보통 가장 마지막에 들어오는 선수들은 부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선수들이었다. 성한 몸으로도 감당해 내기 힘든 경기를 부상당한 상태로 완주해 낸다는 것은 모두에게 존경받을 만한 일이었다. 매일 함께 사막을 달리며 그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를 알기에 모두의 응원과 격려에는 깊은 진심이 느껴졌다. 물론 사막 마라톤에서도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가 매겨진다. 하지만 순위를 떠나 그저 모두들 사막을 달리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무더위와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대회를 중도 포기해야만 했던 선수들도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자원봉사자로 남아 대회의 운영을 도와주고 매일같이 선수들을 응원해 주었다. 사막은 더 이상 나에게 황량하고 척박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결승선 뒤에는 주최 측에서 선수들을 위해 마련한 만찬이 준비돼 있었다. 일주일 만에 제대로 요리된 음식을 먹으니 이제야 정말 음식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전투식량이나 라면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행복했다. 일주일간의 경기 내내 그렇게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시원한 콜라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동안 무더위로 고생했던 시간들이 시원한 콜라의 탄산과 함께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일주일간 제대로 씻지 못해 온몸은 땀과 모래가 뒤범벅이 돼 있었지만 곧 호텔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 행복했다. 평소 일상에서 당연히 누렸던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두들 몸을 움직이는 것에 비해 먹는 것이 부실했던 터라 한눈에 보기에도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다들 대회 전에 비해 볼이 쏙 들어가고 홀쭉해져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나는 체중이 5kg 넘게 빠져 있었다. 아마 지금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우리의 몰골을 봤다면 충분히 거지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 상당히 행복해 보이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모두들 고된 6박 7일을 버텨 내고도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일주일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선수들과 뒤풀이를 통해 완주의 기쁨을 한 번 더 나눌 수 있었다. 우리 한국팀은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무사히 경기를 완주해 냈다. 아마 혼자였다면 이런 결과를 만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머나먼 타지에서 함께 고생하고 도와 가며 서로에게 큰 힘이 돼 주었기에 이런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 대회의 후폭풍으로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그날 밤은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과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다음 날 짧은 일정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눈을 감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동안 지난 일주일을 머릿속으로 다시 그려보았다. 일주일간 사막에서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마치 꿈만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검붉게 그을려 따끔거리는 손목과 무릎의 화상, 온몸의 근육통이 그것이 절대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