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포기하지 않는다면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누군가가 사막을 달리는 동안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달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정말이었다. 낮에는 체감온도 5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리고 밤에는 추위와 쏟아지는 졸음을 버텨 내야 했다. 굳이 생각나는 것을 말하자면 다음 CP가 언제 나올지에 대한 생각과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콜라가 먹고 싶다는 생각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의 느낌은 몸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리로 전달되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쉽게 말하면 사막이라는 곳은 몸을 움직임으로써 무엇인가를 깨닫고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롱데이의 꿀같은 쪽잠.JPG


롱데이의 새벽은 졸음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무박으로 80km를 달려야 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기껏해야 CP에서 10분 정도의 쪽잠을 청하는 것이 전부였다. 체력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모두가 정신력으로 기나긴 롱데이의 새벽을 버텨 내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혜진 누나가 어디서 준비했는지 커피를 물통에 타서 같이 걷던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다들 졸음에 힘들어하던 때에 누나가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씩을 나눠 마셨다. 신기하게도 방금까지 병든 닭처럼 졸던 사람들이 커피를 먹고 금방 기운을 차렸다. 그때 모두들 혜진 누나의 커피에 극찬을 쏟아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커피의 맛이었다. 그때의 커피는 아직까지도 내가 마셔 본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인생 커피’로 기억된다.

롱데이의 CP.jpg

사막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컴컴해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야간에는 어두워진 시야로 인해 코스를 이탈할 위험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둘 이상이 같이 다니는 것을 권장했다. 낮에는 모래 위에 핑크색 깃발을 일정한 간격으로 꽂아 코스를 표시했다면 밤에는 녹색 형광 막대를 이용해 코스를 표시했다. 하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인해 종종 코스를 표시해 둔 것들이 모래에 묻히거나 날아가 버리곤 했다. 그럴 때는 앞사람이 걸어간 발자국을 보고 방향을 잡고 길을 찾았다. 사막에서 다른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밤이 되니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진 형광 막대에 함께 걷던 사람들이 모두 당황해했다. 다들 흩어져 형광 막대를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마치 허허벌판의 사막에서 야밤에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여기 찾았어!”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저 멀리서 형광 막대를 찾았다는 기쁜 외침이 들려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재밌는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을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막 마라톤을 하며 느낀 것이 있다. 사람의 걸음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다. 낙타파 사람들과 함께 걷다가 잠깐 신발의 모래를 털어 내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다. 모래를 털어 내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것까지 몇 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앞에 가던 선수들이 저 멀리서 걸어가고 있었다. ‘혹시 내가 안 본 사이 달렸나?’라는 생각 이 들 정도였다. 문득 ‘걷는 것’처럼, 빠르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 꾸준한 행위가 쌓이고 쌓이면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꼭 한 번에 확 달리거나 변화할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를 마치 꾸준히 걷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분명히 남들보다 한참이나 앞서 나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광훈이 뒷꿈치.JPG

경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부상과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함께 사막을 걷는 낙타파 광훈이의 왼쪽 발목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통증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로 심각했다. 압박붕대를 칭칭 둘러 감았지만 퉁퉁 부을 대로 부은 발목은 마치 코끼리의 다리를 연상케 했다. 불편한 왼쪽 발목으로 인해 무게 중심을 반대편에 두고 걷다 보니 오른쪽 무릎도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걸음이 틀어지자 발바닥은 크고 작은 물집으로 빼곡하게 뒤덮였다. 양쪽 발뒤꿈치는 반복되는 운동화의 마찰로 움푹 패여 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광훈이의 몸 상태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온몸 곳곳에서 찾아오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진통제조차도 무의미했다. 지금 당장 포기를 선언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광훈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무 말 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묵묵히 힘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광훈이에 비하면 오히려 나는 컨디션이 좋은 편이었다. 내 무릎도 상태는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오른쪽 무릎은 보호대 없이도 버틸 만한 정도였다. 그래서 내 오른쪽 무릎의 보호대를 풀어 광훈이에게 건네주었다.

롱데이 급수받는 중.jpg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하며 걷던 칠흑같이 어두운 사막의 밤이 지나고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스름하게 해가 떠오르며 사막의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약 20시간 동안 걷고 뛰며 무박으로 진행되었던 기나긴 롱데이도 어느덧 끝이 보였다. 함께 롱데이를 버텨 준 한국팀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조금씩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롱데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를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뒤돌아보면 매 순간순간이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롱데이를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롱데이를 통해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표했던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진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다면.JPG


책.jpg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매거진의 이전글#30. 잊을 수 없는 롱데이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