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6박 7일간의 사막 마라톤을 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그중 커다란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음식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척박한 사막에는 음식점이나 자판기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만일 있다고 해도 대회 규정상 외부의 원조를 받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회 주최 측에서 지급해 주는 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이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 선수들은 일주일간 본인이 먹어야 할 19끼니 분량의 모든 식야 함에 있어 가방의 무게는 선수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한두 걸음을 걸을 때는 모르지만 사막에서 매일 마라톤 풀코스에 상당하는 거리를 달리는 선수들에게는 작은 무게의 차이도 확연하게 몸으로 체감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1g이라도 가볍게 가방을 꾸리기 위해서 거의 모든 식량을 수분이 없는 전투식량(동결건조식품) 혹은 라면 등으로 준비한다. 수분이 포함된 음식은 동결건조식품에 비해 무게가 배로 많이 나가기 때문이었다. 전투식량은 끼니때마다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빠르게 조리되기 때문에 간편하고 부피도 작아 가방에 넣고 다니기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일주일 동안 먹을 모든 식량을 전투식량으로 준비해 갔다. 하지만 대회 기간 동안 하루 삼시 세끼를 전투식량으로만 먹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물리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질릴 것을 대비해 여러 가지 맛의 전투식량을 준비했지만 몇 번 먹다 보니 다 비슷한 맛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군 복무를 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전투식량을 자주 먹진 않았던 것 같다. 전투식량으로만 끼니를 때우다 보니 음식을 먹고는 있지만 제대로 먹은 것 같지 않은 그런 공허한 느낌이 식사 후에도 지속됐다.
설상가상으로 매일의 체감온도가 40도가 훌쩍 넘어가는 무더운 사막에서의 강도 높은 마라톤으로 인해 육체적 피로가 쌓이면서 입맛까지 싹 사라져 버렸다. 특히 태양이 가장 뜨겁게 지면을 달궜던 4일 차 롱데이 구간에서는 입맛이 없다 못해 아무런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만 마셔도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한낮의 폭염으로 인해 더위를 단단히 먹은 듯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에서 하루 종일 걷고 뛰고를 반복하는 것은 칼로리 소모가 엄청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허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음식도 먹고 싶지 않았다. 바짝 마른 입속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서걱거리는 모래의 질감뿐이었다.
문득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동안 물 이외에는 제대로 먹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이상하게도 입맛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먹어야만 했다. 가방 구석에서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온 육포를 꺼내 입에 구겨 넣고 억지로 씹어 삼켰다. 오늘 먹는 첫 음식이었다. 비록 육포 몇 조각으로 오늘 하루 동안 소모한 칼로리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아마 얼마간 움직일 정도의 힘을 만들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사막 마라톤에서 음식은 더 이상 맛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경기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어야만 했다. 그것은 먹는 행위라기보다는 증기기관차가 계속 달릴 수 있도록 화로에 석탄을 공급하는 행위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하염없이 달리다 바라본 어둑해진 사막의 밤하늘에는 샛노란 반달이 떠 있었다. 정말 샛노란 반달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밤하늘에 떠 있는 반달이 노란 단무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노란 단무지로부터 짜장면이 연상되어 사막의 밤하늘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 드디어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나 보다. 분명 입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짜장면을 생각하니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잔뜩 고이기 시작했다. 정말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짜장면이 있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몇 그릇이든 비워 버릴 자신이 있었다. 누군가가 사막의 모래언덕 위에서 짜장면을 판다면 한 그릇에 10만 원이라 해도 당장 사 먹을 의향이 있었다. 순간 ‘여기서 선수들을 상대로 짜장면을 판다면 정말 대박이 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가장 먼저 짜장면을 먹으리라 다짐했다.
해가 진 사막은 달빛을 제외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이기 때문에 헤드랜턴으로 앞길을 비추며 달려야 한다. 헤드랜턴에 의존하여 달리다 보니 눈앞의 시야는 밝은 낮보다 훨씬 좁아지게 된다. 멀리 보고 달릴 수 없기 때문에 헤드랜턴의 빛이 닿는 작은 반경 내에서 시선을 집중하며 달려야 했다. 시야가 좁고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돌부리나 장애물에 걸려 부상을 당할 위험도 상당히 커진다. 그래서 낮보다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고 신경을 더욱 곤두세워야 했다. 또한 밤에는 거리 감각이 무뎌져 낮과 같은 거리를 달려도 체감상 훨씬 길게 느껴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막을 자그마한 헤드랜턴의 불빛 하나에만 의존해 하염없이 걸으며 생각했다.
‘오늘 이 밤의 끝이 있긴 한 걸까?’
롱데이 구간의 악명 높은 난이도는 익히 들어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무박으로 80km를 달리는 것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를 극한으로 몰고 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이 점점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당장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아직 다음 CP에 도착하려면 한참이나 더 가야만 했다. 잠깐 쉬어가기로 마음먹고 발걸음을 멈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가방을 옆에 벗어던지고는 모랫바닥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그러자 비현실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막의 밤하늘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처음에는 하얀 구름이 길게 밤하늘을 떠다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구름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별들이 모여 만들어 낸 은하수였다. 책에서만 봤던 은하수를 아프리카의 밤하늘에서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은하수는 영어로 ‘milky way’라고 표기한다. 말 그대로 우유를 뿌려 놓은 길이라는 뜻인데 은하수를 보니 정말 왜 그러한 어원이 생겨났는지 알 것 같았다. 하늘에 누군가가 별이 가득 담긴 우유를 실수로 쏟아 놓은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값비싼 5성급 호텔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사막에는 5성급 호텔은 없었지만 은하수급 뷰를 가진 푹신한 ‘모래침대’가 있었다. 당장 한 발을 내딛는 데에만 급급해 땅만 보며 계속 걸었다면 아마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문득 우리의 삶과 지금의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다니며 정신없이 일만 하고 당장 먹고사는 것에 급급해 눈앞에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며 사느라 고개만 들면 바로 볼 수 있는 인생의 아름다운 은하수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사막의 밤이었다. 드넓은 사막에 온연히 나 혼자만이 누워 있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은 나를 기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의 중심은 나였다.
‘그래,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야.’
왜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온 걸까? 지금까지 살면서 신경 써 왔던 주변의 시선이나 기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껏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진정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가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며시 눈을 감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했다. 그날의 사막에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