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둘째 날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텐트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늘 달린 거리를 모두 합쳐도 이제 겨우 전체 250km 중 절반도 안 되는 거리인 80km이었다. 어깨는 배낭의 무게에 짓눌려 빨갛게 달아올라 퉁퉁 부어 있었다. 팔을 들면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팔을 제대로 들어올릴 수 없었다. 오늘 아침부터 상태가 좋지 않은 왼쪽 무릎의 영향으로 무게 중심이 반대쪽으로 쏠린 탓에 상태가 괜찮았던 오른쪽 발목에도 통증이 찾아왔다. 이 상태로는 당장 내일 하루를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았다. 아마도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지금보다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져 있을 것이다.
‘만약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과연 내일 저녁에도 나는 무사히 경기를 완주하고 이렇게 텐트에 도착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인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선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방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져야 무릎과 몸이 받는 하중이 줄어들 것이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만만한 것이 바로 식량이었다. 가방에는 아직 남은 대회 일수만큼의 5일치 식량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까지 내가 경기를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중도 포기를 하게 된다면 배낭 속에 남은 음식들은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일단 내일 하루를 살아남는 것이 나에게는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미친 듯 가방에 있는 음식들과 조금이라도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추려 내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가방의 무게가 가벼워지도록 필요 없는 것들을 모조리 가방으로부터 덜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중에는 앞으로 먹어야 할 2일치의 식량도 포함되어 있었다. 분명히 경기가 끝으로 갈수록 식량이 부족하게 될 것이 뻔했지만 그때 굶으면서 달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나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당장 내일 하루를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무엇인가에 홀린 듯 음식과 물건들을 덜어 내자 가방이 그 전에 비해 많이 가벼워졌다. 사실 처음 짐을 꾸리며 식량을 준비할 때 나는 욕심을 부렸었다.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식량을 챙겨왔고 당연히 가방도 남들보다 더 무거웠다. 음식은 먹으면 줄어드는 무게라 금방 먹어치우면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식량을 먹어 가방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 그 이상으로 내 몸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무거워진다는 점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져만 갔기 때문에 가방이 가벼워지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경기 시작 전 이미 사막 마라톤을 여러 번 참가한 베테랑 선수와 모닥불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내 가방의 무게를 들은 그 선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가방은 15kg이었는데 그 친구는 한눈에 보기에도 작은 10kg의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게가 늘어날수록 경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충고를 나에게 해 주었다. 그때 나는 ‘조금 무거워도 더 든든하게 먹고 달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맞았다. 나는 욕심을 부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식량을 챙겨 왔고 그로 인해 늘어난 가방의 무게가 내 온몸을 짓눌러 빠르게 몸을 망가트렸다. 처음부터 그의 말을 듣고 욕심을 버렸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자신의 고집과 욕심을 내려놓고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충고와 조언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3일차 역시 40km를 달려야 했다. 몸 상태가 그렇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어제 굳은 결심을 해서인지 아니면 가방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 져서인지 생각보다 무난하게 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전히 10km마다 진통제를 한 알씩 입에 털어 넣으며 달렸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더 이상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든 버텨 볼만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내일이었다. 경기 4일차인 내일은 80km를 무박으로 잠을 자지 않고 달려야 하는 롱데이 날이었다. 지금까지 넘어온 산이 작은 언덕이라고 비유하자면 내일의 롱데이는 커다란 산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의 경기를 무사히 완주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막이라고 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모래언덕만을 떠 올릴 수 있지만 이번 코스에서 내가 만난 사막은 그런 고정관념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오늘 달리는 코스는 사막 바로 옆으로 푸른 대서양의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처음에는 날이 너무 더워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진짜 바다였다. 바다의 거친 파도가 사막과 만나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으로부터 대자연의 신비함이 느껴졌다. 대서양의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를 느끼며 사막을 달리는 것은 이색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내가 아프리카 사막에서 가장 처음 만난 동물은 사자도, 얼룩말도 아닌 바로 물개였다. 저 멀리 해안가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개들이 살고 있었다. 사막에서 물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다들 코스를 벗어나 더 먼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사막에서 만난 기이한 진풍경을 보기 위해 해변으로 몰려들었다.
사막과 연결된 해변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동물의 뼈와 많은 물개들의 사체가 흩뿌려져 있었다. 귀여운 물개들을 보다가 마주한 광경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현지인에게 듣기로는 사막에는 많은 자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들일 거라고 했다.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달린 곳에서 차로 몇 시간 떨어진 곳에서는 실제로 야생 사자가 출몰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사막을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수많은 야생동물들을 보는 것 또한 내가 꿈꿔 왔던 것이었지만 사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뒷목이 서늘해졌다.
앞을 바라보니 2일차부터 낙타파 멤버로 합류한 태훈이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태훈이는 1년 전 사막 마라톤에 도전했다가 완주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는 친구였다. 첫 번째 도전한 사막 마라톤에서는 인대가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완주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회를 포기한 날 태훈이는 홀로 텐트에 들어가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도전하리라 굳은 결심을 했고 결국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사막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과 금액 등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잘 알기 때문에 태훈이의 도전이 더욱 대단하고 멋있게 보였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었지만 태훈이를 보며 느끼는 점이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태훈이는 이번 대회를 멋지게 완주해 냈다.
사막을 달린다고 하면 아름다운 사막을 감상하며 멋지게 달려나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곳이 바로 사막이다. 그런 곳에서 하루 40km 이상을 걷고 달리는 것은 절대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은 항상 괴리감이 있는 법이다. 사막의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 풍경을 감상할 만한 힘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간단한 행위를 하는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게 느껴졌다. 너무 덥고 지쳐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쳐다보며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앞으로 남은 대회를 잘 버텨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복잡한 생각들이 가득했다. 그때 누군가가 모래 위에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모래 위에는 ‘GO’라는 한 단어가 쓰여 있었다. 그저 앞으로 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었다. 복잡한 생각과 걱정은 지금 아무리 많이 해 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은 당장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닌 그저 묵묵히 목표를 향해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