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사하라 사막 마라톤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롱데이 날이 밝았다.
롱데이는 이틀간 무박으로 쉬지 않고 80km의 사막을 달려야 하는 날이다. 일주일간의 전체 경기 일정 중 가장 극한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구간이기도 하다. 앞선 3일 동안 하루 평균 40km 이상을 달렸기 때문에 이미 온몸 구석구석이 멀쩡한 곳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 탓에 어깨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고 무릎과 발목, 허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질러 대는 것 같았다. 사막을 달린지 3일 만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출발선을 나서며 진통제 한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당장 한 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에 진통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출발선을 나서 걷기 시작한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전혀 몸이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힘들고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쌓인 피로 때문이겠거니 하며 첫 번째 CP에 도착해서 온도계 눈금을 확인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땅이 달궈지며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은 오후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불구하고 온도계의 눈금은 40도를 훌쩍 넘어 50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야 왜 유독 더 힘들게 느껴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온도계는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는 듯 시간마다 그 시간대의 최고 기온을 갱신하고 있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선수들은 사막이라는 거대한 불가마 속에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CP 안의 풍경은 거의 난민수용소와 다를 게 없었다. 많은 선수들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사막의 유일한 그늘인 CP 천막 안으로 몰려들었다.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선수들은 전의를 잃고 도망쳐 온 패잔병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선수들의 옷 위에 넓게 퍼져 있는 새하얀 소금기가 사막의 더위를 한 번 더 실감나게 했다. 어느 누구도 다음 CP를 향해 출발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모두들 제 발로 다시 뜨거운 태양과 맞설 용기가 나지 않는 듯했다. 대회 주최 측에서도 폭염을 의식하여 최대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컨디션 조절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또한 출발하기 전 선수들이 충분한 양의 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검사했다.
햇빛을 피해 그늘에 누워 있으니 온몸이 나른해져 금방이라도 졸음이 몰려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정 없이 이곳에서 쉬다 보면 나중에 제한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해 실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늘에서의 휴식은 달콤했지만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있을 수는 없었다. 다음 CP로 출발하기 전 다시 신발 끈을 바짝 조여 매고 가지고 있는 물통에 물을 한가득 채웠다. 물통이 달린 양쪽 어깨 끈이 물통의 무게에 축 늘어지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다시금 다음 CP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그늘 한 점 없이 이글거리는 사막을 맨몸으로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더위는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선수들에게는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을 걷는 듯 바닥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눈앞의 풍경은 현실감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들이마시는 공기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웠고 가방에 넣어둔 초코바와 젤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물거리고 있었다. 나 또한 사막의 열기에 금방이라도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의 땀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비 오듯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손실된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하기 위해 물통에 전해질 알약을 녹여 벌컥벌컥 들이켜 보지만 사막의 열기는 물통 속의 물마저도 뜨겁게 달궈 버렸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물에 자꾸만 헛구역질이 났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금방이라도 눈앞이 흐려질 것만 같았다. 문득 이렇게 가다가 정말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 마라톤에서는 많은 양의 땀을 흘리기 때문에 수분과 함께 손실된 전해질을 보충해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탈수와 함께 신체에 전해질 불균형이 일어나 심한 경우 정신을 잃고 생명까지 잃을 수도 있다. 의식적으로 계속 물을 마시려고 노력했지만 한 모금을 들이킬 때마다 계속해서 헛구역질이 났다. 뜨거운 사막을 달리며 뜨거운 물을 마시는 일은 고역이 따로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물에 타먹는 전해질 알약을 입에 넣고 알사탕처럼 조금씩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물로머리와 얼굴, 목을 적셔 체온을 낮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이곳이 아프리카의 뜨거운 사막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실감되기 시작했다. 살얼음이 있는 차가운 콜라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살면서 이토록 시원한 콜라가 절실했던 적이 또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 선수들 또한 더위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걷고 있는 서양인 참가자는 땅을 주시하며 걷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위태위태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는 사막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주최 측 차량에 경기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온몸이 붉게 달아올라 더위를 잔뜩 먹은 것 같아 보였다. 체감온도가 50도가 넘어가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누가 포기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10km 남짓, 아직까지 70km를 더 걸어야 기나긴 롱데이가 끝난다. 눈앞으로 경기를 포기한 참가자들을 태운 주최 측의 차량이 지나갔다. 차량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베이스캠프로 이동해 짐을 챙겨 처음 묵었던 타운의 호텔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순간, 경기를 포기하고 호텔로 가게 되는 참가자가 너무 부럽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음속에 있는 작은 악마가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을 귓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포기하면 편해. 어서 너도 포기한다고 말하고 호텔로 가는 차에 태워 달라고 해. 어느 누구도 포기했다고 널 비난하지 않을 거야.’
정말 그랬다. “Give up.”이라는 말 한마디면 나도 편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해 시원한 콜라를 양껏 먹고 개운하게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아무도 나를 이곳에 오라고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았다. 사막에 올 때 내 선택으로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기하는 것 또한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날 괴롭히는 살인적인 더위, 육체적 고통, 일주일간 씻지 못해 땀과 모래 범벅이 된 찝찝함보다 스스로가 ‘포기’라는 단어를 내뱉는 것이 더 무섭고 두려웠다. 포기한다면 지금 당장 몸은 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눈앞에 마주한 상황과 맞서지 않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 놓고 가방에 달려 있는 수많은 명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문득 지금 이 순간 나는 혼자 사막을 달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수많은 분들과 함께 사막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꿈을 믿고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이 떠올랐고 소아암 환우들의 환한 미소를 꼭 지켜 주고 싶었다. 더 이상 나약해질 수는 없었다. 광활한 사막에 홀로 남겨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뿐이었다.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의 태양은 포기를 종용하듯 더 야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총 7일간의 경기 일정 중 가장 뜨거웠던 롱데이 날, 반나절 만에 100여 명의 참가자 중 15명이 더위를 이겨 내지 못하고 의료진의 신세를 지며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