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둘째 날 아침, 눈을 뜨고 몸 상태를 체크했을 때 비로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전신에 근육통이 심하게 느껴졌다. 밤새 자는 동안 누군가에게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근육통이 아니었다. 왼쪽 무릎을 굽히거나 펼 때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15kg에 가까운 가방을 메고 사막을 달리는 일은 어깨뿐만 아니라 무릎에도 큰 무리가 된 것이다. 출발 전 부상에 대비해 챙겨 왔던 무릎보호대로 무릎을 꽉 조여 맸다. 출발한지 얼마나 됐을까, 처음에는 좀 괜찮은가 싶더니 한 걸음 한 걸음을 땅에 내딛을 때마다 왼쪽 무릎의 통증이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울퉁불퉁한 자갈과 푹푹 빠지는 사막의 모래는 무릎의 상태를 빠른 속도로 악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지속되는 날카로운 무릎의 통증에 결국 달리던 발걸음을 멈춰 가방 속에서 진통제를 꺼내 들고 입에 곧장 털어 넣었다.
사실 통증은 사막 마라톤에서 흔히 선수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사막 마라톤에서는 심심치 않게 부상이라는 불청객이 선수들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회 참가를 위한 필수 물품에 진통제가 포함돼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진통제를 먹게 된 시기였다. 250km를 달리며 언젠가는 진통제를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경기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진통제를 찾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빨리 진통제를 먹게 된 지금의 상황에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제 총 250km의 전체 구간 중에서 이제 고작 50km를 지나왔을 때였다.
‘앞으로 남은 200km의 사막을 과연 불편한 다리로 진통제에 의지해서 버텨 낼 수 있을까?’
처음 사막 마라톤을 준비할 때는 경기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 중 극소수만이 완주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막 마라톤의 완주율은 경기의 난이도에 비해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 처음에는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사막 마라톤이 왜 이렇게 높은 완주율을 보이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사막 마라톤을 참가하게 되면서 높은 완주율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일단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운동과 마라톤을 즐기고 꾸준히 해 왔던 사람들이 경기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사막 마라톤을 위한 필수 준비 물품 및 장비, 항공료, 참가비 등의 적지 않은 비용을 감당하며 경기에 참가할 정도면 사막 마라톤에 대한 열정과 의지 또한 보통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경기에 참가한 많은 선수들은 모두들 에너지와 투지가 넘쳤다. 게다가 이야기를 나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한 번 이상 이번 대회와 비슷한 장거리 사막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경기의 완주율이 높은 것은 대회의 난이도가 낮아서가 아닌 참가한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경기를 중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상일 것이다. 내가 사막을 달리며 가장 우려했던 상황 또한 부상을 당하는 것이었다. 출발 전 피치 못 할 부상만 아니라면 네발로 기어서라도 기필코 경기를 완주하리라 다짐했었다. 경기 전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발을 접질리는 일이 생겨야만 부상을 당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저 사막에서 오랜 시간 달리는 것만으로도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내 몸과 무릎이 그랬다. 우려했던 상황이 이틀 만에 현실이 되어 나에게 찾아왔다. 다행히 진통제를 먹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릎의 통증은 사그라졌지만 좀처럼 걷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어제의 신난 강아지처럼 달리던 내 모습은 만 하루 만에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Well done~!”
갑자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나를 향해 외쳤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CP*에서부터 들려오는 봉사자들의 응원 소리였다. 기운 하나 없이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 그들의 파이팅 넘치는 응원에 신기하게 정말 힘이 났다. 대회에 참가한 많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누군가가 시켜서 온 것이 아닌 그저 사막과 열정 넘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아 봉사활동을 위해 사비를 들여 이곳에 온 사람들이었다. 봉사자들은 대회의 운영을 도와주는 스텝으로 참가해 경기 전반의 많은 부분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감사한 분들이었다. 항상 CP에 도착할 때마다 들려오는 그들의 응원 소리는 대회를 하는 동안 늘 커다란 힘이 되었다.
경기 중간 중간에 있는 CP에서 보통은 물통에 물을 채우며 그늘에서 조금씩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오늘은 잠깐 CP에 앉아 쉴 만큼의 여유도 좀처럼 나지 않았다. 5분 정도의 달콤한 휴식을 뒤로한 채 다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속도가 굉장히 떨어져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잠깐이라도 쉴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많이 걸어야만 했다. 시계를 보면서 최대한 속도와 페이스를 유지하며 걷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마음이 계속 불안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결승선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컷오프 타임 또한 바로 내 뒤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어제는 여유 있게 느껴졌던 컷오프 타임이 오늘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어제에 비해 컷오프 타임이 짧아진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몸 상태와 걷는 속도였다.
나와 함께 낙타파 멤버였던 채울이와 광훈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무릎, 발목, 어깨 등 여러 신체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다들 챙겨 온 진통제를 틈틈이 먹으며 사막을 달렸다. 사막 마라톤은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들 컷오프를 당해 탈락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과 타들어 가듯 이글거리는 모래 위를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자연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사막은 이방인인 우리를 쉽게 허락하고 포용해 주지 않는 듯했다. 선수들은 고군분투하며 빠르진 않지만 끊임없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거대한 모래언덕 위에 흩뿌려지듯 흩어져 있는 선수들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대자연 앞에서 ‘나’의 존재는 작디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첫째 날 사막의 태양에 일광화상을 입은 팔목과 무릎은 여전히 검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서 피부 위로 쌀알 크기의 조그마한 수포들이 올라왔다. 움직일 때마다 쓰린 통증이 팔목과 무릎에 찾아왔다. 첫날의 교훈으로 오늘은 피부가 직접적으로 태양에 노출되는 부위가 없도록 완전무장을 하고 선크림도 겹겹이 덧발랐다. 완전무장을 통해 자외선은 피할 수 있었지만 사막의 열기만큼은 조금도 피할 수 없었다. 경기를 하는 내내 끊임없이 몸으로부터 땀이 흐르고 마르기를 반복했다. 빠르게 수분이 증발하는 건조한 사막의 환경 탓에 온몸에서 얼마나 많은 땀이 흘러나왔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지금 마시고 있는 물이 식도를 거치지 않고 곧장 피부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걷고를 반복해 다행히 주최 측에서 제한한 컷오프 타임 전에 간신히 둘째 날의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이렇게 가다가 자칫 잘못하면 정말 컷오프로 탈락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정말 컷오프 타임에 하루 종일 쫓기듯 달렸던 것 같다. 앞으로의 남은 날들이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막 마라톤을 준비해 왔는데 이틀 만에 탈락의 위기가 찾아오다니 이런 현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래도 내심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완주’는 저 멀리 모래언덕 뒤에 본체를 숨긴 채 신기루처럼 희미하게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고, ‘탈락’이라는 녀석은 내 바로 뒤까지 쫓아와 방심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챌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