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새벽같이 일어나 대회 준비를 하는 선수들의 분주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반쯤 눈을 뜨고 바라본 텐트 밖은 아직 어스름하게 해가 떠 어둑해 보였다. 사막의 새벽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새벽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챙겨간 얇은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였다. 사막에서 맞은 첫 아침은 생각처럼 개운하지 않았다. 텐트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자리가 불편해 밤새 잠을 설친 탓이었다. 경기 준비를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덮고 있던 침낭을 돌돌 말아 가방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양쪽 어깨에 달린 물통에는 물을 가득 채우고 땀으로 손실될 전해질을 보충하기 위한 전해질 알약을 물통에 하나씩 넣었다. 모자, 선글라스, 선크림으로 사막의 태양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했다. 운동화 끈은 바짝 조여 매고 가방 끈을 어깨에 잘 맞게 조절했다. 마치 중요한 전투에 나가는 군인이 된 것처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장비들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매일의 날씨와 기타 변수 등을 고려해 그날 달리는 정확한 거리와 컷오프 타임(제한시간)은 당일의 브리핑을 통해 알 수 있다. 경기에 대한 일일 브리핑을 듣기 위해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한국 선수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브리핑 시간이 가까워지자 대회를 위해 완전무장한 선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오늘 달릴 거리와 컷오프 타임을 듣기 위해 모두들 숨죽이고 브리핑에 귀를 기울였다. 사막 마라톤의 첫째 날, 우리가 달려야 할 거리는 39km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마라톤 풀코스에 상응하는 거리를 오늘부터 달려야 한다.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한 스스로를 믿고 사막을 달려야 할 때였다.
브리핑을 모두 마치고 떨리는 마음으로 출발선상에 섰다. 발밑에는 푹신한 모래가 밟히고 있었고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언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피커를 통해 출발을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6박 7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됨을 알리는 총포가 사막의 하늘에 울려 퍼지자 전 세계에서 모여든 백여 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사막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도 수많은 선수들 사이에서 사막을 향해 힘찬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발은 푹푹 빠지고 가방은 무거웠지만 이상하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주인을 만나 신난 강아지처럼 나는 신나서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사막에서 가장 신난 사람을 뽑는다면 분명 내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신남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20km 구간을 넘어가자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는 사막을 달리는 것은 포장된 도로를 달릴 때와는 확연히 체력소모가 달랐다. 모래로만 이루어진 구간의 경우는 발이 푹푹 빠져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발목에 커다란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것만 같았다. 반면 크고 작은 자갈로 이루어진 구간은 조금만 방심하면 자갈을 밟아 발목을 크게 접질릴 수 있어 주의를 기울이며 달려야 했다. 운동화 속으로는 미세한 모래들이 보이지 않는 틈으로 끊임없이 들어와 발걸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 내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어느 순간 운동화 속은 미세한 모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주는 덮개인 ‘게이터’를 착용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달리는 속도는 처음에 비해 눈에 띄게 느려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대부분의 구간을 빠르게 걷고 있었다.
사막 마라톤이라고 하면 경기의 전체 일정을 모두 달려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순위권을 노리는 선두그룹의 경우는 전체 구간을 쉬지 않고 달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걷고 달리는 것을 본인의 체력에 맞게 적절하게 안배해 경기를 운영하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한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전 구간을 걷기만 해도 250km의 사막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대답은 ‘가능하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로 걷는다면 완주는 불가능하다. 대회 규정에는 컷오프 타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냥 여유 있게 걷는다면 컷오프 타임에 걸려 실격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 구간을 걷는 것으로만 완주하기 위해서는 경보 경기를 하는 수준으로 쉬지 않고 빠르게 걸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포장된 도로가 아닌 모래와 자갈이 있는 사막에서는 뛰는 것만큼이나 걷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국팀의 선수들 중에도 대부분의 구간을 달리는 체력이 좋은 선수도 있었지만 나처럼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달리는 비중보다는 걷는 비중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전체 경기 순위는 뒤쪽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뒤처진 순위에 조바심을 느끼거나 순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모두들 사막을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고 있었다. 사전에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속도가 비슷한 선수들이 모인 후미 그룹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속도가 비슷하다 보니 후미 그룹의 선수들끼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사막을 걸을 수 있었다. 경기 시작 전 우스갯소리로 경기 중 낙오하는 경우 낙타가 그 낙오자를 태우고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낙타와 맨 마지막을 함께 걷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는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며 우리 후미 그룹을 ‘낙타파’로 이름 붙였다. 6박 7일간 함께할 한국팀의 낙타파가 형성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경기를 하는 동안 아침과 저녁에는 텐트가 있는 베이스캠프에서 뜨거운 물을 공급받아 전투식량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막 위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점심때는 뜨거운 물을 공급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초코바, 젤리, 육포, 에너지 젤 등 움직이면서 먹을 수 있는 일명 ‘행동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사막을 달리며 가장 기온이 높은 시간이기도 한 점심때는 사막의 무더위로 인해 입맛이 사라지는 때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물을 마시고 있긴 했지만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입이 바짝바짝 말라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면 항상 입맛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막 마라톤에서 음식을 통해 칼로리를 보충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입맛이 없더라도 입에 무엇인가를 넣으면 신기하게도 금세 힘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물시간에 배웠던 음식이 소화돼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첫날의 코스를 무사히 완주하고 텐트가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려놓다가 가방 끈이 손목에 살짝 스쳤는데 갑자기 피부에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얼굴은 모자와 선글라스 등으로 잘 가렸지만 옷의 틈새로 노출된 무릎과 손목은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자외선 차단제도 얼굴에만 열심히 발랐지 옷의 틈새 부분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었다. 강렬한 사막의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는 반나절 만에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광화상을 입은 것이다. 사막에서의 태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여느 햇빛과는 차원이 달랐다. 경기 첫날 얻은 팔목과 무릎의 화상은 일주일간의 경기 내내 쓰라림으로 나를 괴롭혔다.
텐트 안에는 이미 먼저 경기를 마치고 들어온 많은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후미 그룹으로 완주하긴 했으나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선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로 끝나는 경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섣불리 안심하기에는 너무 많은 날들이 남아 있었다. 전체 일주일의 경기 기간 중 이제 단 하루만이 지났을 뿐이었다. 텐트 밖에는 어제저녁 시간 때와는 상반되게 나와 있는 선수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다들 휴식을 취하러 일찍 텐트에 들어간 것이다. 나도 저녁만 간단히 먹고 바로 텐트로 들어가 간단한 정비를 하고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