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사막의 전야제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어제 도착한 나미비아의 빈트후크에서도 경기 개최지인 스와코프문트라는 도시까지 가기 위해서는 미니 밴을 이용해 또다시 4시간 이상을 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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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스와코프문트의 숙소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선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숙소에 모인 선수들의 눈빛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선수들이 만드는 유쾌한 분위기는 가히 축제를 연상케 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어색했지만, 나도 이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도 그들 사이에서 함께 축제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막 마라톤 한국 팀.jpg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한국 팀


오늘은 사막 마라톤의 공식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분주해진 스텝들의 발걸음이 일정의 시작이 가까워졌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첫 번째 일정으로 사막 마라톤에 대한 개요 및 규칙 등을 소개하는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이 하나, 둘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해 숙소 앞으로 모여들었다. 선수들의 얼굴은 이미 대회가 시작되기라도 한 듯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어 보였다. 그들의 어깨에 붙은 각국의 국기 패치는 참가 선수들의 다양한 국적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백여 명의 사람들은 오로지 사막을 달리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그중에는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붙인 한국팀도 있었다. 13명의 한국팀은 앞으로 6박 7일간의 대회를 함께 고군분투할 든든한 전우들이었다. 브리핑에는 대회 진행을 도와주는 스텝을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이번 대회의 자원봉사자 중에는 한국인 형찬 씨도 있었다. 형찬 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 중에 사막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고 한다. 낯선 타지에서 열리는 대회에 한국인 스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반갑고 든든하기까지 했다. 같은 국적에 같은 언어를 쓴다는 사실이 머나먼 타국에서는 그렇게도 반갑고 친숙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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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의 브리핑을 마치고 다음으로 필수 장비를 점검하는 장비 검사 시간이 이어졌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모든 선수들은 사막 마라톤에 필요한 30여 가지 이상의 필수 장비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장비 검사의 시간이 되자 선수들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다들 각자가 준비한 장비들을 숙소 앞 잔디밭에 잘 보이게 펼쳐 놓고 장비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필수 장비가 없을 경우 주최 측에서는 선수의 경기 참가를 거부할 수도 있다. 도시가 아닌 사막에서 경기를 하는 만큼 장비들은 유사시 생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면 정말 그 자리에서 울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장비 검사는 대회를 진행하는 운영진들에 의해 철저하고 꼼꼼하게 진행됐다. 특히 식량에 대한 검사는 더욱 신중하고 세밀하게 진행했다. 일주일간의 대회 기간 동안 먹을 음식의 열량이 최소 권장 칼로리에 충족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준비한 식량의 칼로리를 하나하나 계산해 보기까지 했다.


선수들과 운영진들 간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옆에서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한국 선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회 참가에 필요한 필수 장비 중 한 가지인 헤드랜턴이 갑자기 고장난 것이다.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헤드랜턴이 없으면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 등에서도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분의 헤드랜턴을 챙겨온 다른 한국인 참가자에게 헤드랜턴을 빌려 아찔한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다.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다행히 한국팀 전원이 장비 검사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긴장됐던 장비 검사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심적으로 많이 외롭고 불안했겠지만 이렇게 한국팀이라는 지지체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기 시작 전부터 든든한 힘이 되었다.


모든 장비 검사가 끝나고 선수 배번을 받는 것으로 오늘 예정된 공식적인 일정이 모두 끝났다. 숙소에 들러 6박 7일간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는 가방 하나만을 챙겨 사막으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경기가 시작되는 사막으로 가기 위해서는 모래와 자갈이 끊임없이 펼쳐진 황량한 길을 차량으로 4시간 이상 달려야만 했다. 도로에는 뿌연 모래 먼지만이 우리가 지나온 길을 따라 외롭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니 직감적으로 점점 더 사막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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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사막에는 선수들의 숙박을 위한 간이 텐트가 설치돼 있었다.오늘부터 대회가 진행되는 일주일간 나를 포함한 선수들이 생활하게 될 공간이었다. 텐트라고 해서 깔끔하고 안락한 내부 공간을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텐트 안의 바닥은 온통 모래투성이였고 한 텐트를 약 8명의 선수가 함께 사용하다 보니 공간 자체도 굉장히 협소했다. 텐트는 그저 새벽의 이슬을 막아 주고 몸을 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도 일교차가 극심한 사막에서 노숙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일단 배정받은 텐트 한구석에 짐을 풀고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텐트 밖을 나섰다. 텐트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모래뿐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사막에 도착한 것이다. 발걸음을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의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내일이면 나는 이곳 사막을 달리게 될 것이다. 일주일간 250km의 사막을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두 발에만 의지해 달려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큰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터질 듯 설레고 두근거렸다. 사막에 오기 위해 지난 반년 동안 준비했던 그간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얼마나 기다려 왔던 순간인가! 내일부터 아무런 생각 없이 온연히 나를 믿고 눈앞에 보이는 사막을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완주를 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지만 지금 이렇게 사막 마라톤을 위해 사막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후회는 없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날 밤은 선수들 사이에서 전야제의 날이다. 대회로 인한 피곤함도 없고 다들 경기 시작 전의 설렘으로 가득 차 축제 같은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가지고 온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식량은 모두 본인의 가방에 짊어지고 달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최대한 가벼운 건조식품 등을 준비한다. 하지만 오늘 저녁과 출발하기 전 먹는 내일 아침은 가방에 넣고 달리지 않기 때문에 메고 달릴 가방의 무게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참치 캔, 각종 통조림, 소세지, 콜라 등 서로 가지고 온 음식들을 모아 전야제의 만찬을 열었다. 무게 때문에 모두 경기가 시작되면 가방에 넣고 있기에는 부담스러운 음식들이었다. 다르게 말해 앞으로 일주일간은 다시 만나기 힘든 음식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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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람들과 함께한 사막에서의 첫 만찬은 여느 고급 레스토랑 못지 않게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도 어쩐 일인지 아무도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텐트로 가려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부터 당장 6박 7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지만 선수들 대부분은 일찍 잠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모닥불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모두들 오늘밤을 한껏 즐기기로 작정한 듯했다. 사막의 지평선에 숨은 태양은 붉은 기운마저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일찍 잠들지 못했던 사막의 첫날밤은 그렇게 하염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책.jpg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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