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프리카로 출국하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드디어 아프리카 나미비아로 떠나는 출국일이 밝았다.


아직도 오늘 내가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빠트리고 가는 것들이 없는지 대회 장비들과 여권, 비자 등 준비 물품들을 최종 점검했다. 대회 참가를 위한 일정을 제외하면 현지에서 따로 관광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가방에는 온통 대회 참가를 위한 장비들과 식량으로 가득했다. 최종 점검을 마치고 출발하기 전 병동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중환자실에 들렀다. 수간호사 선생님과 병동 식구들은 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라며 마지막까지 좋은 말씀과 응원을 해 주셨다. 병동 식구들의 응원을 받고 병동을 나서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내가 사막으로 간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긴 16일의 오프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자 나도 모르는 사이 눈이 감겼다. 지금까지 사막 마라톤을 가기 위해 준비해 왔던 많은 일들과 근무 마라톤으로 인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지난 밤, 늦게까지 사막으로 간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려 밤새 잠을 설친 이유도 있었다. 그 덕분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저 막연하게 꿈만 꾸던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공항에 왔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며칠 후면 나는 광활한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모래사막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사막을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왈칵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정말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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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막 마라톤의 개최지인 나미비아까지 가는 것은 총 세 번의 비행과 두 번의 경유를 거쳐 만 하루가 걸리는 기나긴 여정이었다.공항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은행에 들러 환전을 했다. 환전한 현지 화폐에 그려진 치타 그림이 내가 가는 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공항에 도착한 탓에 탑승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멍하니 벤치에 앉아 공항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공항에 왔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들뜬 얼굴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아마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일상을 벗어나 잠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을 방문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공항의 인파 속에서 나는 커다란 물통이 달린 백팩 하나를 둘러메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까지 해외에 나간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나 또한 대부분의 목적이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대회 출전을 위한 출국을 기다리며 공항에 앉아 있으니 뭔가 내가 국가 대표라도 된 것 같은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내가 입고 있는 옷의 양 어깨에는 주최 측의 사막 마라톤을 나타내는 4Desert 대회 패치와 대한민국의 태극기 패치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라면대회 패치와 함께 자신의 국적을 나타내는 국가 패치를 의무적으로 양쪽 어깨에 부착해야 한다. 아마 지나가는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내 모습은 정말 해외 대회를 위해 출국하는 운동선수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나는 이번 사막 마라톤 대회에서만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대표가 되는 셈이었다. 갑자기 양쪽 어깨가 으쓱해졌다.


탑승 게이트 입구의 전광판에는 이번 여정의 첫 번째 경유지인 홍콩이 적혀 있었다. 지금부터 정말 아프리카 나미비아로 가기 위한 대장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서 우연히 나와 같은 대회에 출전하는 채울이를 만났다. 양쪽 어깨에 붙어 있는 대회 패치를 통해 멀리서도 한눈에 사막 마라톤에 출전하는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어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보통 내공을 가진 친구가 아니었다. 이미 철인삼종경기는 물론 크고 작은 대회를 여럿 경험한 스포츠 마니아였다. 이미지는 그저 장난기 많은 여동생 같은 느낌이었지만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라 사막 마라톤에 출전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채울이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첫 번째 경유지인 홍콩에 도착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머나먼 이역만리 타지에서, 그것도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나처럼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준비해야 하는 많은 시간과 비용 등을 감안했을 때 사막 마라톤에 나가기란 어느 누구에게도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미비아 현지에는 벌써 어제부터 한국인 참가자들이 하나, 둘 도착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그들과의 만남 또한 사막 마라톤만큼이나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그들만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찾으러 사막

으로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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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거쳐 두 번째 환승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아직 최종 목적지인 나미비아까지 가려면 한 번 더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공항에서 판매되는 이색적인 기념품들로부터 이미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대회와는 별개로 나미비아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긴 여정이었다. 한국 인천에서 홍콩,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2번의 경유와 3번의 비행 끝에 나미비아 빈트후크 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아프리카 땅을 밟은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한지 만 하루 만에 빈트후크에 있는 현지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는 이미 하루 일찍 여유를 두고 도착한 한국인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번 대회에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 선수들이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만 나를 포함해 총 13명의 한국 선수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현지에 모인 한국인 참가자들 중에는 아직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도 있었고 나와 같은 직장인들도 있었다. 연령대와 직업군도 굉장히 다양했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몇 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금세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사막 마라톤이라는 하나의 접점으로 만나 더욱더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뒤늦게 도착한 나와 채울이를 위해 먼저 도착해 있던 분들이 한국에서 가지고 온 김치와 현지에서 장을 봐 온 재료들로 요리를 해 주셨다. 낯선 타지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 그리고 시원한 맥주가 곁들여져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만남의 순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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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부터 나미비아 여행과 대회 출전을 위해 미리 도착해 있었던 광훈이가 아프리카의 노을에 대해 극찬을 쏟아 냈다. 배도 부르고 소화도 시킬 겸 못이기는 척 숙소 근처로 노을을 보러 나왔다. 숙소 밖을 나와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황홀한 아프리카의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곳까지 오는 긴 여정에서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과 이곳 나미비아의 시차는 8시간으로 한국과 밤낮이 바뀔 만큼 시차가 상당했다. 어제 하루 일찍 도착한 사람들은 물론 나와 함께 도착한 채울이까지 시차로 인한 피곤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평소 3교대 근무로 단련된 나는 시차로 인한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3교대를 하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이런 장점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책.jpg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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