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리허설은 끝났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사막 마라톤의 개최지인 아프리카 나미비아로의 출국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회 출전을 결심하고부터 약 반년 동안 나름대로 꾸준히 훈련을 하며 체력을 키워왔다. 마라톤이라고는 생전 접해 본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처음 대회를 준비하며 많이 힘들기도 했고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분야에 대한 두려움 또한 컸다. 하지만 작년 가을, ‘춘천국제마라톤 대회’를 완주하고서 나는 ‘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일말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근무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한강을 달리며 체력을 키웠고 더불어 헬스도 시작하며 기초 체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처음에는 조금만 오래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에게 잘 맞는 나만의 페이스도 찾을 수 있었다. 마라톤에서는 빠르게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체력을 전체적으로 골고루 안배하는 능력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초반에 무리하게 되면 후반에는 힘이 달려 끝까지 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맞는 페이스를 찾아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어떤 속도로 달려야 가장 빠르면서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라톤은 본인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하는 운동이다. 스스로를 잘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한계에 부딪히며 자신을 알아 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그릇에 흘러넘치지도 그렇다고 남지도 않을 만큼 적당히 담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비단 그것은 마라톤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가면서도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리듬과 속도로 살아가는 것은 가장 빠르면서도 멈추지 않고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기에.


사막 마라톤에 출전하기 전 내 인생의 두 번째 마라톤 풀코스인 ‘동아국제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했다. 첫 풀코스 도전이었던 춘천국제마라톤에 참가했을 때는 훈련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준비가 부족한 만큼 경기 내내 굉장히 힘들었고 후반부에는 걷는 구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 후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길렀고 이번 대회에서는 기필코 후반부에 걷지 않으리라 스스로 다짐했다.


서울 동아 마라톤 사진 (20).jpg 동아국제마라톤 풀코스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그리고 이번에는 그때와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사막 마라톤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최대한 사막 마라톤과 비슷한 운동 환경을 경험해 보기 위해 가방을 메고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기로 한 것이다. 실제 사막 마라톤에서는 일반 마라톤처럼 맨몸으로 가볍게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경기 환경과 비슷하게 경험해 보는 훈련이 필요했다. 평상시 운동을 하면서는 한 번도 가방을 메고 달려 본 적이 없었다. 또한 작년 첫 대회 출전 이후에는 40km가 넘는 장거리를 뛰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회는 나에게 사막 마라톤에 출전하기 전 마지막 리허설 훈련으로 제격인 대회였다.


작년 가을에 이어 반년 만에 또다시 풀코스 대회의 스타트 라인에 섰다. 출발하기 전 가방 속에 필수 물품들을 챙겨 넣고 물통에는 물을 가득 채웠다. 확실히 두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간 달리기 시작하자 아무 것도 메지 않고 달렸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한 걸음을 땅에 내딛을 때마다 가방의 무게가 반동에 의해 어깨를 짓눌렀다. 몸이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 짐이 가득 찬 가방을 메고 달렸을 때는 어깨 끈이 너무 길어 가방이 심하게 흔들렸다. 계속해서 달리며 조금씩 끈을 내 몸에 딱 맞게 조절하자 확실히 처음과 다르게 흔들림이 많이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 가방이 내 몸과 한 몸처럼 느껴지며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물통에 연결된 기다란 빨대를 통해 달리면서 물을 마시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달리면서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상황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실전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여 주고 조금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됐다. 그냥 맨몸으로 달려도 쉽지 않은 마라톤 풀코스를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달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함께 마라톤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은 물론 거리에서 응원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까지 굉장히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덕분에 달리는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경기의 후반부에 갈수록 체력적으로 힘든 탓에 나도 모르게 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곤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달리고 있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누워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체력적으로 위기가 올 때마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아났다. 말 한마디에 이렇게 힘이 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신기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따뜻한 응원 한마디는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응원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어 돌아왔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건낼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저 멀리 희미하게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방의 무게는 처음 달렸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결승선과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와 응원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했다. 인생의 두 번째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결승선의 전광판에 표시된 완주 시간을 보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가을 첫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을 때에 비해 무려 30분 가까이 기록이 단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훈련을 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맨몸으로 달린 게 아니었기 때문에 기록 단축의 소식은 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다.환경은 더 힘들었지만 기록은 훨씬 더 좋아졌다. 지금까지 근무를 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꾸준히 한강을 달려 왔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동아 마라톤 사진 (6).jpg 88회 동아 국제 마라톤 풀코스 (42.195km)완주 메달


달라진 것은 비단 완주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후의 몸 상태 또한 반년 전 첫 풀코스에 도전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처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서는 심한 근육통으로 인해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간을 온몸의 근육통에 시달리며 마라톤의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피로감은 있었지만 그때처럼 근육통 같은 문제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힘이 아직 남아 얼마간 더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체력이 많이 늘었음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풀코스 도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훈련을 했던 성과도 알아볼 수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운동을 하며 사막 마라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도 있었다. 사막 마라톤에 대한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한층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가슴이 뛰고 사막을 달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근무 마라톤도 어느덧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면 작년 가을, 사막 마라톤에 나가기로 처음 결심을 하고부터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숨가쁘게 지금까지 달려왔다. 마라톤에 ‘마’ 자도 모르던 내가 벌써 마라톤 풀코스를 2번이나 완주한 새내기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되어 있었다.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펀딩과 사막 마라톤 준비들, 너무나 힘들고 바빴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어느 것 하나 쉬웠던 것이 없었지만 꿈 하나만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달려왔던 후회 없는 시간들이었다.


출국 전날 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밤은 고된 근무 마라톤으로 죽은 듯 잠들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정말 내일이면 그토록 꿈꿔 왔던 사막을 향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책.jpg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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