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사막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이 없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일을 하며 동시에 마라톤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환자실의 고된 업무 강도는 퇴근 후 나를 녹초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근무를 마치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 두 눈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평상시라면 그대로 곯아떨어졌겠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사막 마라톤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프에 마음 편히 쉬는 것은 나에게 사치였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바쁘게 지내야만 했다.
사막 마라톤 출전을 위한 2주간의 휴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차를 사용하고도 근무표의 휴일을 장기 오프에 몰아야만 했다. 장기 오프의 앞뒤 근무 스케줄은 자연스레 빽빽해질 수밖에 없었다. 긴 휴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근무의강행군은 사막을 가기 전부터 체력적으로 나를 소진시키고 있었다. 문득 사막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부터 근무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막에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쁜 마음을 가지고 근무 마라톤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출국까지 한 달 정도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사막에 간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근무를 위해 눈을 떴을 때 온몸은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졌지만 하루하루가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는 출근을 했더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출국하는 달의 근무표가 나와 있었다. 근무표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사막 마라톤을 위한 출국일과 귀국일의 근무를 확인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근무표에 표시된 오프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어 봤다. ‘하나, 둘, 셋... 열다섯,열여섯. 열여섯?!’ 근무표의 내 이름 옆에는 예정했던 14일이 아닌 16일의 오프가 표시돼 있었다. 알고 보니 수간호사 선생님이 빡빡해 보이는 사막 마라톤의 일정을 고려해 2일 더 길게 휴가를 만들어 주신 것이었다. 16일의 오프라니, 결혼을 하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에게는 절대 쉽지 않은 휴가 일수였다. 그럼에도 선뜻 긴 휴가를 허락해 주신 김세라 수간호사 선생님과 꿈을 응원해 주는 우리 병동 식구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주변의 이러한 배려와 감사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막 마라톤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정했던 출국일이 차츰차츰 다가오자 신경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아프리카 나미비아로 가는 왕복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몇 단계의 간단한 과정을 거치고 결제를 위한 카드번호를 기입하니 어렵지 않게 아프리카로 가는 항공권을 발권할 수 있었다. 대회의 참가비를 입금하고 선수 등록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뒤돌아봤을 때 사막을 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정말 많은 고민들이 있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하지만 막상 결심을 하고 나서부터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가슴속에만 품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 둘 내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었다. 생각만 하고 고민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멋진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런 꿈도 없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지금이 아닌 다음으로 미루다 보면 그 ‘다음’이라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먼 훗날 “그때 왜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라며 후회할 바에는 과감하게 저질러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항상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거라면 나는 해 보고 후회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사막 마라톤을 참가하기 위해서는 30여 가지에 달하는 필수 장비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필수 장비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준비하는 일 또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막을 달리는 데 이렇게 많은 물품들이 필요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국내외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장비들을 검색하고 구매했다. 하나하나 모두 중요한 물품들이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쉽게 구매할 수 없었다.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의 스포츠 전문점을 전전하기도 했다. 필수 장비와 준비 물품에는 일주일 동안 달리며 먹어야 할 식량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막 마라톤에서 음식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식량은 배낭의 무게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먹고 싶다고 해서 아무 음식이나 고를 수는 없었다. 최대한 가벼우면서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고르는 것이 중요했다. 수분이 포함되면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주로 수분이 많이 포함되지 않은 식품들을 위주로 심혈을 기울여 알아보고 준비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대부분의 물품 구매는 인터넷으로 했기 때문에 매일 근무를 마치고 나면 경비실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사막 마라톤은 심신이 건강한 사람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대회임에 틀림없다. 250km라는 물리적인 거리 이외에도 평균 기온이 40도가 넘는 고온의 사막 환경과 부상의 위험 등 극한의 인내심과 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회 주최 측에서는 모든 참가 선수들에게 의사의 건강검진 서류를 요구한다.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는 데 적합한 건강상태를 가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나도 오프 날 건강검진 서류를 발급 받기 위해 근처 병원을 방문했다. 사막 마라톤에 나간다고 하니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간단한 검진과 문진이 얼마간 이어졌다. 사막의 무더위에서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열사병과 일사병 등의 위험이 있어 항상 물을 충분히 마시고 무리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듣고서야 주최 측에서 요구하는 건강검진 서류에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근무 전, 후 그리고 쉬는 날에는 병원 주변 한강을 달리며 꾸준히 체력을 키웠다. 매일 장거리를 달리다 보니 무릎과 발목에 종종 무리가 오기도 했다. 250km의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훈련을 하고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6박 7일간 매일 마라톤 풀코스에 상당하는 거리를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위에서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외에도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비자신청부터 시작해 현지 숙소와 교통편 예약, 환전 등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일들이 쏟아졌다. 사막 마라톤을 위한 준비만으로도 이미 버거웠지만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준비와 홍보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3교대 근무를 하며 이 모든 일들을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감당해 내야 했던 나는 진정 슈퍼맨이 되어야만 했다.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오히려 빨리 사막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다면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가슴 뛰는 일이었기에 고단하고 힘든 준비과정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