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준비하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장애물들에 봉착했었다. 대회 참가를 위한 2주간의 휴가를 받는 것부터 시작해 현실적인 체력문제, 그리고 참가 경비와 관련된 금전적인 문제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마주한 장애물들을 한 가지씩 잘 해결해 나가며 차근차근 사막으로의 발걸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는 바로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나에게 굉장히 생소한 것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 얼핏 들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정확히 그것이 무엇이며, 개설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우선 내게 필요한 것은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의 정의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관련 글들을 찾아보며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기부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금전적인 거래 관계가 형성되는 부분인 만큼 준비 절차나 과정이 까다로웠다. 또한 크라우드 펀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 영상 제작, 스토리 작성, 후원금액별 리워드 설정, 홍보 전략 등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오픈하기 위한 준비과정은 영상 편집, 리워드 구상 및 설정 등 간호사로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하고 낯선 일들 투성이였다. 더군다나 일을 하며 혼자서 이 많은 것들을 준비하려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였다. 펀딩을 위한 아이디어 단계에서 실제 크라우드 펀딩을 정식으로 오픈하기까지는 약 한 달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의 최소 목표금액은 250만 원(1km당 1만 원)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250km를 달리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의 상징성을 담은 최소한의 목표금액이다.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약소하지만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후원금액에 따른 단계적 보상 시스템인 리워드를 설정했다. 리워드는 총 5가지로 많은 금액을 후원할수록 더 많은 리워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리워드는 후원자의 이름을 기부 후기 게시글에 기재해 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사막 마라톤을 하면서 경기 중 촬영한 생생한 사진으로 만든 엽서에 직접 손 편지를 써 드리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리워드로 스케치북에 쓸 원하는 문구를 알려 주면 사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는 리워드였다. 네 번째는 후원자의 이름을 작은 명찰로 만들어 6박 7일간 함께하는 가방에 달고 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리워드는 경기가 끝나고 직접 찾아가 생생한 후기를 들려주겠다는 리워드를
준비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개설한 당일,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후원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속도로 간다면 금방 목표금액인 250만 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후원금이 모이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 고생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펀딩의 속도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펀딩 마감일까지 목표금액을 달성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크라우드 펀딩은 개설만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설 후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목표금액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크라우드 펀딩을 알리고 홍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메신저를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 SNS, 각종 포털사이트, 간호사 커뮤니티 등 다양한 방면으로 소아암 환우를 위한 기부 펀딩을 홍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같이 근무를 마치고 나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어느 순간부터 펀딩 진행 현황을 확인하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어 있었다. 후원금액이 그 전보다 오른 것을 확인하면 그 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반면 펀딩 금액에 변화가 없을 때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펀딩을 노출시키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흘러 처음 목표했던 모금액인 250만 원을 결국 달성해냈다. 모금된 금액은 펀딩 사이트 수수료와 리워드 제작비용을 제외하고는 전액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기부될 예정이다.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단 1원도 없었지만 이미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고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최소 목표금액을 달성했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약 40일간의 펀딩 기간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목표 금액을 달성한 후에도 꾸준하게 많은 분들이 펀딩에 참여해 주셨다. 최종적으로 84명의 후원자분들로부터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294만 원의 소중한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이 금액은 장기간 투병하는 소아암 환우들의 병원비를 생각한다면 결코 크지 않은 돈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소중하고 진심어린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그 무엇보다 값진 금액이었다. 후원을 해 주신 분들의 전체적인 구성을 봤을 때 평소 나를 알고 있는 지인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나를 전혀 알지 못하고 일면식도 없지만 나의 꿈과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망설임 없이 큰돈을 기부해 주신 분들도 있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시간들은 나에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고 있다는 감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이 그 뜻을 알아준다고 했던가, 나에게 또다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기부 마라톤을 준비하며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발행하는 중환자실 신문 한 켠에 내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중환자실 신문 발행을 담당하는 임채만 중환자실장님께서 나의 도전을 좋게 봐주셨고 병원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직접 알아봐 주시겠다고 하셨다. 또한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시며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얼마 후 병원에서도 기부 마라톤에 동참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서울아산병원의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끝전 모으기’를 통해 모아진 모아사랑기금에서 내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한 금액인 294만 원만큼을 1 : 1로 매칭하여 한 번 더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기부해 주기로 한 것이다.힘들었던 만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당장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후원금을 기부하고 싶었지만 후원금 기부는 사막 마라톤을 멋지게 완주하고 나서 하는 것으로 조금 미뤄 두기로 했다. 이제는 한숨을 돌리고 온전히 나의 꿈이었던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준비하는 것에만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눔 프로젝트인 ‘사하라 사막에 피는 꽃’은 사하라 사막 기부 마라톤을 준비하며 내가 기획한 1인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작은 불씨가 마른 장작에 번져 가듯 빠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선의의 불꽃이 피어오르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에서 피어나는 꽃은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내던 꿈이, 누군가에게는 주변을 돕는 따스한 손길이 될 것이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꿈꿔 왔던 내 꿈을 진짜 현실로 만들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