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 때 '라그하임'이라는 RPG 게임에 푹 빠진 적이 있다.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내 캐릭터를 더 강하게 키우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곤 했다. 다양한 몬스터를 잡고 퀘스트를 통해 경험치를 쌓을 때마다 레벨업을 하며 강해지는 내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신선한 흥미거리였고 나는 순식간에 게임의 즐거움에 매료되어 깊게 빠져들었다.
게임에 빠져들수록 당연히 성적은 내리막 곡선을 향했고 공부는 나에게 더 이상 안중에 없는 지루한 것일 뿐이었다. 주말마다 나는 PC방에 출석도장을 찍었고 가상의 공간에 있는 내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시간들을 투자해야만 했다. 학교에 가서도 온통 머릿속에는 게임 생각뿐이었고 당연히 수업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게임의 캐릭터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소위 말하는 '현질' 또한 서슴지 않았다. 내가 가장 처음 은행에서 혼자 업무를 본 것이 '아이템베이'라는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현금을 입금한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였는지 감이 올 것이다. 그 당시 덜덜 떨면서 무통장입금 종이에 계좌번호를 적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에도 게임을 하며 많은 시간들을 소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속의 캐릭터가 강해질수록 현실의 나는 더욱더 약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그간의 게임들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순간의 즐거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게임을 했던 그 많은 시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느꼈던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 이후 게임보다 더 즐거운 것을 찾았다. 하지만 미친 듯이 게임에 빠져있던 중고등학생 때와 지금을 비교해봤을 때 사실 커다란 차이는 없다. 가상의 게임 속의 캐릭터가 현실의 내가 됐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제는 '나'라는 현실 속의 캐릭터를 조금 더 강하게 키우기 위해 날마다 고민하고 노력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경험치를 쌓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시야를 넓히며 레벨업을 하기 위해 나에게 시간을 소비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현질' 또한 하고 있다. 중학생 때의 나처럼 캐릭터를 강하게 키우기 위한 투자는 절대 아끼지 않는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게임을 하면 할수록 실제의 내가 더 강해지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빠진 게임은 아마 죽을 때까지는 쉽게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