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비록 기대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나는 걱정과 달리 누구보다 학과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남중(男中)에 남녀 분반이었던 고등학교를 거치며 주변에 여자인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여자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는 거리낌 없이 친구를 사귀며 친해질 수 있었다. 여느 신입생들처럼 수업이 없는 날에는 친구들을 만나 놀면서 캠퍼스 생활을 한껏 즐겼다. 대학생활의 즐거움에 빠져 적당히 공부하고 신나게 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순식간에 한 학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점점 더 무더워지고 있는 날씨는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맞게 될 여름방학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우연히 길을 걷다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 한 장을 발견했다. 포스터에는 대학생 해외봉사단을 모집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적혀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도 잘 돌아다녀 본 적이 없는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 해외는 지금까지 살면서 접해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미지의 세상처럼 느껴졌다. 만약 합격하게 된다면 첫 해외여행이자 첫 대외활동을 해외봉사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최종 합격을 한 사람에게 활동비 전액을 지원해 준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포스터를 계속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마주한 포스터였지만 오래전부터 내가 이곳을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기숙사에 돌아가자마자 당장 포스터에 적혀 있는 홈페이지 주소로 들어가 지원양식에 맞춰 정성들여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때 해외봉사단 지원을 위해 적었던 지원서가 내 인생의 첫 자기소개서였다. 지원서를 쓰는 내내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이미 내 마음은 머나먼 인도로 떠나 멋지게 해외봉사를 하며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완성한 지원서를 저장하고 ‘지원하기’ 버튼을 눌렀을 때의 마음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만큼이나 설레고 간절했다.
운이 좋았는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서류 합격을 알리는 문자 한 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자에는 2차 면접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필이면 여름방학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시험인 기말고사 바로 전날로 면접이 잡혔다. 면접 장소도 내가 지내고 있는 지역이 아닌 서울이었다. 차로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기말고사 시험 바로 전날 면접을 위해 오가야 했다. 기말고사 시험도 분명히 중요했지만 그 이상으로 해외봉사에 대한 마음이 간절했기에 갈지 안 갈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문자로 면접 날짜를 통보받은 순간부터 곧바로 면접 준비와 기말고사 준비에 돌입했다. 정신없이 바쁜 시험기간이었음에도 나는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생에 첫 면접에서 나는 무척이나 긴장해 있었다. 하지만 절실했던 만큼 떨리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나는 꿈에도 그리던 해외봉사단 최종 합격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너무 기쁜 나머지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현대기아자동차에서 주관하는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에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만약 내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면 아마 이런 소중한 기회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바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스무 살의 여름,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첫 대외활동이었던 해외봉사를 위해 인도 남부에 위치한 첸나이로 날아갔다. 당시 나는 수백 명의 봉사단원들 중 가장 막내였다. 내가 첫 해외여행으로 비행기를 탄다고 하니 함께 봉사를 가는 형과 누나들이 짓궂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너 비행기 탈 때는 신발 벗어야 하는 거 알지?”
“아, 정말이요?”
“그래서 신발주머니도 챙겨 와야 해, 너 설마 안 들고 왔어?”
아무것도 모르고 진심으로 그 말을 믿고 있는 나를 보고는 형과 누나들이 모두 깔깔깔 웃어댔다. 처음 도착한 인도에서 나를 반긴 것은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무더위였다. 한국의 여름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 같았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살면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더위였다. 샤워를 해도 시원한 것은 그 순간뿐이었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땀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게다가 물이 부족한 지역인 탓에 샤워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인당 주어진 물 한 통으로 샤워와 빨래까지 해결해야 했다. 내가 욕심을 부려 한 통 이상의 물을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이 씻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물을 양껏 사용할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2주 후에는 머리를 감으며 몸에 거품을 내고 양치를 하는 동시에 발로 빨래를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적응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지 숙소의 상황 역시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천장에 달린 커다란 팬 하나로 인도의 무더위를 버텨 내야 했다. 팬에서 불어오는 미적지근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정신이 몽롱해지는 듯했다. 방안이 답답하게 느껴져 숙소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누군가 장난을 치려고 몰래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사람이 아닌 커다란 뿔을 가진 소 한 마리였다. 숙소 앞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는 나에게 커다란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내가 인도에 와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건물들은 미처 완공하지 못한 듯 콘크리트 사이로 녹슨 철근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쓰레기가 가득한 길거리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난생 처음 접해 본 환경과 광경들이 매일같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속한 의료봉사 팀이 맡은 과제는 현지 학교를 방문해 보건의료 교육을 하고 열린의사회에서 나온 의사들을 보조해 의료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잠을 줄여가며 밤새 팀원들과 의료봉사에 대한 회의를 하고 보건의료 교육을 위한 교육 자료와 도구를 제작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첫날의 봉사를 위해 현지 학교로 이동했다. 아이들은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과의 접촉이 괜히 꺼려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나에게 먼저 다가와 살갑게 대해 주었다. 그들의 때 묻지 않고 맑은 눈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마음속으로 벽을 쳤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낙후된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대부분 병원이 멀리 있고 비싼 병원비 탓에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수많은 사람들을 안내하고 관리하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나오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우리에게 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커다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과 표정으로 충분히 서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스무 살의 첫 여름방학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어린 나이에 첫 해외를 봉사활동으로, 좋은 사람들과 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내 인생의 큰 행운이었다. 처음 해외에 나가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엄청난 자극이었고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2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2주의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적으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함께 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좋은 분들이었고 배울 점도 정말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경험과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양질의 자양분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해외봉사가 끝난 이후에도 나는 봉사활동이라는 뜻깊고 보람찬 활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대학생활 내내 봉사활동의 재미에 푹 빠져 대학교 봉사동아리 및 여러 곳에서 대학생 봉사단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봉사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것은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과 봉사나 기부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저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었다. 봉사활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보람과 의미가 있었지만, 봉사활동을 하며 여러 사람과 만나는 것 또한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자 배움의 장이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그러한 각양각색의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곁눈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꾸준히 해 왔던 봉사활동은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는 동시에 나를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감사한 일이었다. 대 학을 졸업할 때에는 어느덧 200시간 이상의 봉사시간이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봉사를 통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러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 뒤돌아보면 도리어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나눴던 그 이상의 것들 을 얻을 수 있었다. 간호학과는 과 특성상 많은 학습량과 과제, 실습 등으로 학기 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낸다. 그래서 그런지 간호학과에서는 대외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책 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책 속에 있지 않다.
다양한 경험이 없다면 좁은 시야를 벗어나기 힘들다. 대학생활 때 최대한 빨리 넓은 세계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게 굳이 해외일 필요는 없다. 물론 해외라면 더욱 좋다. 어항 속의 물고기는 좁은 어항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지만 바다로 나온 물고기는 바다의 크기만큼이나 선택의 폭과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