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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준 May 18. 2020

#15. 남자 간호사가 아니고 간호사입니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남자가 간호사를 해?”

“당연히 의사인 줄 알았지.”   

  

간호학과로 진학하고는 물론 임상에서 일을 하면서도 종종 들어 본 말들이다. 처음 간호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일부러 여자가 많은 학과를 골라서 가는 게 아니냐.”는 친구들의 우스갯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잘못된 성 편향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간호사는 여성의 이미지가 강한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이다. 비단 간호사뿐만 아니라 소방관, 경찰관, 군인, 어린이집 선생님, 승무원 등 또한 성 고정관념이 짙은 직업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남녀로 직업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성 편향적 시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직업에는 남녀의 성별도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첫 남자 간호사가 배출된 1962년 이래로 현재까지 약 1만 7천 명 이상(2019년 3월 기준)의 남자 간호사가 배출됐다. 전체 간호사의 수를 100명으로 봤을 때 약 4명이 남자 간호사인 셈이다. 아직까지도 그 숫자는 여전히 미미한 편이지만 매년 간호사를 꿈꾸며 간호학과로 진학하는 남성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남자 간호사가 임상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초기에는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과 같은 특수부서로 몰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병동을 비롯한 신생아실, 보건교사까지 점점 더 넓은 분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각자의 자리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이제는 임상에서 활동하는 남자 간호사를 만나는 일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다.     


내가 일하는 중환자실에도 남자 간호사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어느덧 나를 포함해 5명이 되었다. 확실히 아직은 병동에 비해 특수부서에서 일을 시작하는 남자 간호사들이 많은 편이다. 직장 생활을 함에 있어 남녀를 굳이 나눌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같은 남자라서 더 가깝게 지낼 수 있고 더욱 편하게 병원 생활에 대한 속내를 털어 놓기도 한다. 오프가 맞는 날에는 함께 콧바람을 쐬러 다녀오기도 하며 힘든 병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서로에게서 얻기도 한다. 신규로 남자 간호사가 들어온다면 아마 기존의 남자 간호사들은 신규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지지체계가 되어줄 것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남자 간호사들이 임상에 배출되어 가까운 미래에는 남녀의 성비가 비슷해지는 날도 올 것이라는 기대도 해 본다.   



내가 일했던 외과계중환자실(SICU)의 남자 간호사들

  


남자 간호사라고 하면 무거운 의료장비 혹은 환자를 옮기거나 정신병동에서 발버둥치는 환자를 제압하는 등 상대적으로 힘이 필요한 부서에서 많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여자 간호사가 섬세하고 꼼꼼하지 않은 것처럼 반대로 모든 남자 간호사가 힘이 센것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성 편향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임상에서 일하다 보면 여자 간호사만큼이나 섬세하고 친절한 남자 간호사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제는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성별에 구분 없이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라는 전문직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매년 남자 간호사의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과 편견이 남아 있다. 아직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남자 간호사를 위한 탈의실 등의 편의시설도 열악한 편이다. 실제로 학생 때 병원으로 실습을 갔는데 남자 간호학생을 위한 탈의실이 없어 곤란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여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던 기억이 있다. 간혹 남자 간호학생을 위한 탈의실이 있는 병원도 있었지만 그마저 각종 의료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곳들이 전부였다. 점점 더 남자 간호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임상에서는 편견으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간호학생 때 산부인과로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하루는 한 임산부가 정기검진 초음파검사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배가 많이 불러 한눈에도 출산일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초음파를 위해 옷을 배 위까지 걷고 다른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검사를 위한 준비를 도와 드리고 있었다. 그때 남자였던 내가 불편했는지 나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결국 산부인과 실습을 하는 내내 나는 병동 복도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산부인과에 실습을 나왔던 다른 남자 간호학생들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민감한 신체 부위를 다뤄야 하는 경우가 생길 때면 여자 환자들이 남자 간호사를 기피하거나 다른 여자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달라며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때의 상황과 환자분들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가 아닌 ‘한 명의 간호사로서 의료인으로 바라봐 줬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언젠가는 ‘남자’ 간호사가 아닌 한 명의 ‘간호사’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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