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극심한 취업난이 매년 이어지고 사회도 불안정한 와중에 안정된 직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간호사라는 직업의 높은 취업률과 전문직이라는 안정성을 보고 매년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가 되기 위해 간호학과로 진학하고 있다. 3교대라는 단점이 있지만 적지 않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아마 한 몫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높은 취업률과 돈만 바라보고 와서는 결코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근무를 마치고 나면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침대에 곧장 쓰러지곤 했다. 3교대 근무로 인한 잦은 수면패턴의 변화는 피로를 더욱 가중시켰다. 오프(off duty: 비번)에도 좀처럼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고 하루 종일을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엇인가를 할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간호사 친구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으로 잘 알려진 탈진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번아웃증후군이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 등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번아웃증후군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직군 중 하나가 바로 간호사였다. 통계에 따르면 약 70% 이상의 간호사들이 번아웃증후군을 겪어봤으며 특히 고된 업무에 시달리는 중환자실의 간호사는 무려 97%가 번아웃증후군을 경험해 봤다고 한다.
교대 근무로 인해 규칙적인 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식사를 제때 챙겨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3교대 근무를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은 잘 수 있을 때 자고 밥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했다. 하루는 전날의 이브닝 근무에서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늦잠을 자느라 아침과 점심을 거른 채 오후 근무에 출근한 적이 있다. 하필 그날 중증도가 높은 위중한 환자를 돌보게 됐다. 환자의 상태는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당연히 저녁식사는 생략했다. 그리고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심한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24시간 이상 입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던 것이다. 환자의 경관유동식은 잠시라도 끊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꼬박꼬박 챙기면서 정작 스스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내 환자의 소변통은 매시간 놓치지 않고 비우고 기록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12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했다. 그날의 퇴근길에는 유난히도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근무 중 식사를 할 때면, 중환자실을 출발해서 식당에 도착, 밥을 먹고 다시 중환자실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 항상 30분을 넘지 않았다. 누군가 그렇게 빨리 먹고 오라고 시킨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좀처럼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업무량 때문이었다. 밥을 먹는 날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이미 버거울 정도의 일이 쌓여 있을 때는 식사를 건너뛰는 일도 다반사였다. 응급 환자를 간호하느라 12시간을 넘게 화장실에 가지 못해 참고 참다가 방광염에 걸린 동기도 보았다.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이직률은 30%를 훌쩍 넘긴다고 한다. 그 통계적 수치가 나타내는 의미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깊게 와 닿았다. 오후 근무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는 출근 길, 점심시간에 벤치에서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병원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여유로움이 우리네 간호사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괜스레 슬픔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환자실에서 힘든 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이식을 받고 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은 환자분이 두 발로 중환자실에 걸어 들어와 해 주신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면회 때 잠시 들어온 보호자분이 잘 부탁한다며 맞잡아 준 손의 따스한 온도. 신규 때부터 함께 고생하며 서로의 넋두리를 매일같이 받아 주던 동기들. 정신없이 바쁜 근무를 끝내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그날의 고생을 털어 버리게 해 준 동료 간호사들. 뒤돌아보면 주변의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내가 이곳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힘이었고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였다.
힘든 신규 생활을 버텨 내기 위해서는 목표를 정하고 자신만의 버텨 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임상경력 1년을 꼭 채워 보겠다.” 혹은 “5천만 원을 모을 때까지는 그만두지 않겠다.”등 그 목표가 돈, 경력 그 이외의 어떤 것이든 상관은 없다. 일단 목표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를 버텨 낼 이유와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목표를 이뤘다면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단기적 혹은 장기적 목표를 정하면 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본 방법이다.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고 의지할 수 있는 지지체계를 만들어 두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오프 날만 되면 하루 종일을 침대에서 보내는 주변 간호사들을 많이 봤다. 물론 3교대의 고된 업무로 인해 피로가 쌓였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으니. 하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항상 아픈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아픈 환자에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루 종일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좁은 방에만 있다면 우울한 감정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오프 날에는 이불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적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동기 등 자신의 고민이나 고충을 털어 놓을 지지체계를 잘 이용해야 한다. 운동이나 독서 같은 취미 활동 등 각자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간호사 개개인이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힘들게 버텨 내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 가장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간호사들을 병원 밖으로 내몰고 있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호사 1인당 배치되는 환자의 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것은 오롯이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의료의 질 저하로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간호사도 간호가 필요한 사람이다. 간호사가 행복할 수 없는 나라에서는 결코 환자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간호사로 일하면서 근본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바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진 일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 버린 투약, 체위 변경, 기본간호 등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커다란 굴곡에서 겪게 되는 따스하고 감사한 손길일 것이다. 또한 내가 하는 사소한 간호 행위 하나하나가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조금씩 살려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러한 소중한 사실을 잊고 지내기 쉽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일인지를 끊임없이 되뇌어 볼 필요가 있다.
간호사는 생명을 다뤄 살 떨리는 직업이 아닌, 생명을 다루기에 더욱 고귀하고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