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영화배우 James Dean이 남긴 명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고 내일 죽을 것처럼 꿈꾼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그것은 거지든 부자든 누구에게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이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정확히는,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평상시에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백발에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을 가진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가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러지 못한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며 많은 분들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보며 죽음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어쩌면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겉으로 보기에는 중증도가 그리 심해 보이지 않는 환자 한 분이 중환자실로 오셨다. 엑스레이 상으로 폐렴이 진행되어 병동에서 전동 온 환자였다. 환자분은 스스로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어 내는 능력이 부족해 치료를 위해 기관내삽관이 필요해 보였다. 보통 폐렴이 진행되면 기관내삽관을 하고 매시간 관을 통해 고무튜브를 넣어 가래를 뽑고 약물을 투여하며 경과를 지켜본다. 이러한 치료과정이 환자에게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보통은 치료기간 동안 진정약물을 투여하여 수면을 유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환자 또한 폐렴이 상당히 진행되어 기관내삽관과 진정치료가 불가피해 보였다. 환자분은 숨 쉬는 게 조금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아직 충분히 대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였다. 기관내삽관과 진정치료를 시작하기 전 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았다. 기관내삽관 직전 환자분은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아무렇지 않게 “나 너무 오래는 재우지마.”라고 말을 건넸다.“알겠어요, 너무 오래 재지 않도록 할게요.”라고 기도삽관을 맡은 의사는 대답했다.
그 후 수면 유도 약물이 투여됐고 기관내삽관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며칠 만에 폐렴이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그때 나누었던 대화가 그 환자의 생전 마지막 대화가 되어 버렸다. 오래 재우지 않겠다고 말했던 의사의 말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 있었던 어느 누구도 그때 나눴던 대화가 환자분의 생전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환자분 스스로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을 알았다면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또 하루는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중환자실에 온 적이 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라면 좋아할 만한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그런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린 소녀는 갑작스러운 몸살 기운에 감기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급성 간부전이 나타났고 간성혼수와 심한 뇌부종으로 인해 의식까지 잃게 됐다.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자 의료진과 소녀의 가족들은 고심 끝에 최후의 방법으로 간이식을 결정하게 되었다.
다행히 친척 중 한 명이 소녀의 간이식에 적합하여 급하게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 12시간에 이르는 간이식 수술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녀가 기나긴 시간을 잘 버텨 준 덕에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간이식 후 뇌부종이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했고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의료진들과 가족들 모두 소녀의 회복에 크게 기뻐했다. 간이식 수술 후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어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가게 됐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출근을 하니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다시금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동에서 상태가 호전되어 가나 싶더니 갑작스럽게 간부전이 나타났고 또다시 뇌부종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나는 환자가 병실로 올라가면 다시는 마주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환자가 건강을 되찾아 퇴원을 하고 간혹 감사의 인사를 위해 찾아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장 좋은 것은 다시 환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유인 즉 다시 환자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는 병동에서 상태가 안 좋아져 또다시 중환자실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소녀는 후자의 경우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소녀의 안색은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의식 없이 기관내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소녀에게는 시간이 많이 없어 보였다. 이식했던 간이 소녀의 몸에서 제대로 버텨 내지 못했고 치료를 위해서는 재이식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물론 어린 소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재이식을 할 의사가 분명했다. 소녀는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였기 때문에 급하게 재이식을 위한 뇌파검사를 진행하게 됐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재이식을 위한 뇌파검사에서 소녀는 뇌사 판정을 받게 되었다. 뇌사상태라고 하면 쉽게 말해 뇌가 죽어 버린 상태를 말한다. 여전히 심장이 뛰고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은 가능하지만 의학적으로 의식이 깨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뇌사 판정을 받은 후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어린 소녀의 불씨는 힘없이 꺼져버렸다. 소녀의 가족들은 모두 그 자리에 쓰러져 오열하기 시작했다. 의료진으로서 옆에서 함께 소녀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무엇인가 끝이 날카로운 것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소녀가 갑작스럽게 아프고 간이식을 받고 병세가 악화되어 가족의 곁을 떠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과연 소녀는 본인이 앞으로 채 한 달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만약에 영화 ‘인타임’이나 ‘데스노트’에서처럼 사람의 남은 수명이 눈에 보인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여전히 말라빠진 식빵을 입에 구겨 넣듯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며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소비하며 살아가게 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의 가치는 같을 수 없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나 사형 날짜가 잡힌 사형수에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농밀하고 소중한 시간들이 될지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늘 곁에 가지고 있는 것일수록 익숙함에 젖어 소중함을 잊기 쉽다. 너무나도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오늘 하루, 그리고 다가올 내일은 모두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생각하기 싫고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을 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는 것이다.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에 죽음이라는 녀석을 만나게 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번 씩 웃을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정도로 지금까지 많은 선택을 해 왔고 앞으로 해야 할 더 많은 선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그러한 선택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새로이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직면할 선택의 기로에서 후회 없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어떠한 일을 시작하거나 무엇인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만약 오늘 하루가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나는 과연 이 일을 할 것인가?’
한 문장의 이 질문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현명한 결정을 이끌어 주는 좋은 삶의 지표가 된다. 혹시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게 어떨까.
‘오늘 하루가 당신의 삶에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루는 당신의 삶에 최고의 선물이며 내일 하루는 당신이 살아온 삶의 최고의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