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어딘가에서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중환자실은 병원에서 죽음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치료 후 호전되어 건강하게 퇴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좁은 침대 안에서 몇 달이고 누워 지내다가 유명을 달리하시는 분들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엇갈리는 운명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볼 때면 삶의 기구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애매한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환자들을 죽을힘을 다해 끌어당기기 위해 애쓰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었다.


간호사들이 출근을 하면 매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응급카트를 점검하는 일이다. 응급카트에는 수십 가지가 넘는 다양한 약물, 각종 의료물품, 제세동기 등의 응급상황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이 갖춰져 있어 신속하게 응급상황을 대처할 수 있게 한다. 응급카트에 있는 물품이 한 가지라도 없거나 제세동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응급카트를 점검하는 일은 환자들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응급카트에 있는 약물의 개수와 종류, 유효기간, 물품의 작동 여부, 제세동기의 작동 여부와 충전 상태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것들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이 응급카트를 사용할 일이 없는 것이겠지만 중환자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응급카트를 끌고 환자에게 달려가는 일이 생기곤 한다.


간이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이식 후 예후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식 후 심한 거부반응과 합병증으로 인해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서 투병을 하던 환자분이 있었다. 그 환자분에게는 매일같이 찾아와 병간호를 해 주는 아들이 있었다. 30분씩 오전, 오후 두 번의 짧은 면회였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지극한 효성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상태는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었다. 몇 달 전 처음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의 건장했던 체구는 눈에 띄게 많이 야위어 있었다. 환자의 장기는 이미 대부분 망가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오랜 병원 생활 끝에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각종 약물들과 의료기기들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실오라기 같은 생명의 끈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심정맥관을 잡기 위한 굵은 바늘이 수없이 지나간 목 근처에는 오랜 병원 생활만큼이나 많은 주사바늘의 상처들이 있었다. 매일같이 안 좋아지는 환자의 각종 검사 수치들은 서서히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힘들게 버텨 주던 그 환자의 심장이 갑작스레 멎었다. 이미 이전에도 수차례 심장이 멈췄다 돌아왔었던 적이 있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담당 간호사는 다급하게 주변에 소리쳐 도움을 요청했고 담당 의사와 주변 간호사들은 응급카트를 끌고 그 환자의 주변을 순식간에 에워쌌다. 즉시 환자 위로 올라가 흉부를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이 이어졌고 응급 약물인 에피네프린(epinephrine)이 투여됐다. 하지만 의료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멈췄던 심장은 다시 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버지의 심장이 멈췄다는 연락을 받은 아들이 헐레벌떡 중환자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심장이 멎은 후 5분이 채 되지 않아 중환자실에 도착한 것을 봤을 때 지금의 상황을 예상한 듯 병원 근처에 있었던 게 분명했다. 도착한 아들은 심폐소생술을 받는 아버지를 얼마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이제 됐으니까 멈춰주세요.”


그 짧은 말 한마디에는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더 이상의 의미 없는 연명치료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들 모두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줄 뿐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의 외침을 들은 의료진들은 모두 일제히 하던 것들을 멈췄다.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심전도는 여전이 미동도 없이 직선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환자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도와 드리기 위해 몸에 있는 각종 주사 바늘과 배액관들을 제거하고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기관내삽관도 제거했다. 각종 연명장치와 의료 기계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일 때보다 오히려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아 드리고 가장 깨끗해 보이는 환의를 골라 갈아입혀 드렸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가족들과의 이별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 드렸다. 깊이를 예상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보호자는 중환자실을 떠나면서 우리를 향해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환자분은 평소에 그렇게도 나가고 싶어 하셨던 중환자실을 조용히 떠나가셨다.


2장 관련 사진들 (29).jpg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어딘가에 위치한 중환자실


오랜 시간 동안 간호사들과 함께했던 만큼 간호사들이 느끼는 슬픔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일하는 내내 괜스레 환자분이 떠나간 빈자리가 휑하고 크게만 느껴졌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마스크를 얼굴에 반쯤 덮고 다른 환자의 밀린 투약을 위해 다시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한동안 병동 전체가 슬픔에 잠겨 조용해졌다. 하지만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 그 자리는 새로운 응급 환자로 채워졌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별의 슬픔은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것이었다.


책.jpg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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