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내가 일하게 된 외과계중환자실(SICU)은 여느 외과 중환자실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의 외과계중환자실은 교통사고와 같은 일반 외상 환자들이 입원하는 ‘SICU1’과 간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입원하는 ‘SICU2’로 나뉜다. 내가 일하는 곳은 후자인 간이식 수술 환자들을 전담으로 집중 관리하는 중환자실이었다. 말하자면 중환자실이라는 특수부서 중에서도 더욱 특수한 곳에서 일을 하게 된 셈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간이식 수술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는 곳이었다. 그 명성만큼이나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찾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간이식 수술을 위해 찾는 곳이기도 했다.
간이식 수술은 수술시간만 해도 약 12시간에 달하는 굉장히 큰 수술이다. 기나긴 간이식 수술을 버텨 낸 환자들은 수술 부위를 봉합한 후 마취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수술실에서 곧장 중환자실로 넘어왔다. 이식 환자가 수술실로부터 나오면 중환자실 전체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배에는 인간의 몸에서 가장 큰 장기인 간이 오고 갈 만큼의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었고 배액을 위한 작고 둥근 주머니들이 수술 상처 주위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중환자실에 도착한 직후 환자들의 외관을 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수술실에서 얼마나 큰 사투를 벌이고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환자의 치료와 회복은 전적으로 중환자실에 있는 우리들의 몫이었다.
수술실로부터 나온 환자가 중환자실에 도착하면 곧 바로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활력징후와 심전도, 동공반사, 의식 상태, 수술 부위의 양상, 각종 배액관의 배액 양상 등의 전반적인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기관내삽관이 너무 깊거나 얕게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심장까지 연결된 중심정맥관의 위치는 적절한지, 폐의 모양과 상태가 어떤지 등을 확인했다. 도착해서 나간 혈액검사 결과에서는 적혈구, 혈소판 등 추가적인 수혈이 필요한지를 확인하고 심장에 영향을 주는 전해질이 부족한 경우 즉시 약물을 통해 교정을 해 신체의 상태를 정상 범위로 이끌어 회복이 최적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동 맥에서 채혈한 혈액에 녹아 있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확인하고 인공 호흡기의 설정 값을 조절하는 것 또한 치료를 위해 중요한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물수건으로 온몸에 묻은 빨간 소독약을 닦아 드리고 피와 오물이 묻은 더러운 옷 대신 깨끗한 환의로 갈아입혀 드렸다.
간이식 수술을 마치고 환자가 나오면 주위에 벌떼처럼 모든 간호사 들이 달라붙어 저마다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을 순식간에 해냈다. 따 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임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환자의 상태와 관련해 즉시 조치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담당의에게 알려 즉각적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 간의 팀워크이다. 의사와 간호사의 커뮤니케이션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했고 그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었다. 1분 1초가 급할 때 중요한 혈액과 약을 신속하게 타주시는 조무원님들과 검사나 시술을 위해 신속한 이동을 책임져 주시는 이송직원분들, 항상 깨끗하고 청결한 중환자실을 위해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들 또한 저마다 큰 역할을 해 주고 계셨다. 병원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환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의 마음으로 협심해서 꺼져 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려 내고 있었다.
큰 수술을 받은 만큼 간이식을 받은 환자들은 수술 후에도 손이 많이 가고 세심한 간호가 필요했다. 간이식 후에는 새로 이식받은 장기에 대한 거부반응을 예방하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투여한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식 환자들을 간호할 때는 철저한 손 씻기, 마스크, 글러브 및 가운 착용 등 감염관리뿐 아니라 섬세한 간호 기술이 필요했다. 한 겨울에도 전신을 덮는 비닐 가운을 입고 일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술 직후에는 면역억제제의 혈중 농도를 조절하는 것부터 시작해 각종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 항진균제 투약과 매일같이 혈액검사와 동맥혈가스검사, 흉부 엑스레이 촬영, 초음파검사 등이 필수적으로 이어졌다. 혹여나 합병증이 생기면 추가적인 검사와 시술이 필요하기도 했다.
큰 수술만큼이나 많은 치료과정이 필요한 만큼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수술비와 입원비 등의 금전적인 부분도 분명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간이식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 간경화나 간염 등의 말기 간질환자의 경우 간이식이 유일하게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간이식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우리나라의 가족 문화와 끈끈한 정에 대해 매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가 간이식이 필요한 경우 부모가 자식에게 혹은 자식이 부모에게 선뜻 간을 나눠주는 경우가 흔하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으면 형제자매 혹은 친척까지 나서서 가족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기도 한다. 외국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그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은 뇌사자의 장기기증에 의존하며 뇌사자 간이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의 생체 간이식 비율이 훨씬 더 높고 활발하다.
간이식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부모님에게 간을 이식해 준 자식들이 환자복을 입고 면회를 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수술 상처에 복대를 싸매고 보기만 해도 힘겨운 걸음으로 중환자실로 면회를 오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끈끈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다행히 간이식을 받은 수혜자에 비해 간을 나눠준 공여자는 회복 속도가 빠른 편이다. 또한 간은 재생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장기로 이식 후 원래 크기의 1/3만 남아 있어도 2달 안에 수술 전의 크기와 비슷하게 자라고 기능도 그 전과 같이 회복된다고 한다. 배에 수술 상처는 남게 되겠지만 소중한 가족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간이식은 분명히 그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찾은 한 줄기의 빛이었을 것이다.
뇌사자 간이식의 경우는 예상치 못하게 응급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뇌사 판정을 받은 기증자에게서 최대한 빨리 간을 이식받기 위해서였다. 한번 수술이 잡히면 예기치 못한 수술 스케줄에 수술실은 물론 중환자실에서도 환자를 받기 위한 준비로 손발이 빨라졌다. 환자의 컨디션도 생체 간이식 환자에 비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더욱 긴장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간이식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이 기증된 간을 이식받고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 이들에게 새 생명을 나누어 주고 가는 감사한 기증자가 없었다면 그들은 소중한 삶을 다시금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최선의 방법은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