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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준 May 20. 2020

#16. 또 한 번의 해외봉사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스무 살 때 처음 경험한 해외봉사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돼 주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꾸준히 봉사를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의 해외봉사가 기점이 되었다. 나눔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봉사의 가치와 보람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때의 경험 덕분이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봉사하러 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가 일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에서도 해외 봉사팀을 주기적으로 파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때마침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필리핀과 베트남으로 의료봉사 파견을 갈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원내 공고를 발견했다. 갑자기 스무 살 여름의 기억이 떠올라 다시금 그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간호학과 학생으로 의료봉사를 갔었기 때문에 내가 전문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 봉사를 가게 된다면 간호사로서 조금 더 전문적인 의료봉사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가진 기술이나 재능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봉사를 지원하기 위해 모집공고를 알아보니 병원에서 지원해 주는 소정의 지원금을 제외한 경비 전액을 봉사자들의 사비로 가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약 일주일간의 봉사를 위한 기간도 봉사자 개인의 휴가와 연차를 사용해야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내 시간과 돈을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놀고 오는 것도 좋겠지만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며 휴가를 보내고 싶었기에 고민 없이 해외봉사단 지원신청서를 제출하게 됐다.     


얼마 후 봉사를 신청한 병원 직원들끼리 첫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약사 등 다양한 직군의 봉사자 분들이 모여 계셨다. 직군뿐만 아니라 연령대도 굉장히 다양했다. 첫 모임에서는 현지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진료를 보게 될 과를 정하고 인원을 나눴다. 의료봉사에는 외과, 내과, 피부과, 치과, 약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했다. 그중 내가 맡은 분야는 외과 파트였다. 이번 외과 파트는 교수님 한 분과 인턴 한명, 그리고 간호사 2명이 한 팀이 되었다.     


출국일이 점차 가까워지자 근무를 하면서 쉬는 날마다 틈틈이 모여 의료봉사 물품들을 준비했다. 필요한 의약품과 기구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우리의 봉사는 시작되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모두들 자신의 시간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봉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도착한 현지의 사정은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다. 의료봉사를 위해 도착한 장소는 현지의 병원이긴 했지만 병원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창고에 가깝게 느껴졌다. 침대와 수납장에는 뽀얀 먼지가 가득 쌓여 있고 의료물품이나 기구도 사용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급한 대로 청소를 하고 침대를 옮긴 후 준비해 갔던 약품과 기구들을 풀어 그럴싸한 간이 진료실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내과, 외과 등의 다양한 진료과 뿐만 아니라 초음파, X-ray, 혈액검사를 하는 곳까지 웬만한 작은 병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내가 봉사를 하게 된 외과 파트에는 첫날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봉사를 하면서는 병원에서 일할 때보다 조금은 여유 있는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끝도 없는 줄이 매일같이 이어졌고 중환자실에서 일을 할 때만큼이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게 됐다. 봉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긴 했지만 힘든 만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의료의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봉사에 참여했다.     



외과 파트를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는 커다란 혹을 몸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의 경우 간단한 수술로 쉽게 제거할 수 있는 혹을 이곳 사람들은 평생 동안 그대로 가지고 살고 있었다. 어깨, 등, 목,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있는 혹은 평생 동안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혹은 지방종(lipoma)으로 간단한 수술로도 제거가 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평생 등에 있는 혹 때문에 편히 눕지 못했던 사람도 있었고 입안에 있는 혹 때문에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매번 고생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     


외과 파트에서는 간단한 수술을 위한 준비도 해 왔기에 사람들을 오랫동안 괴롭힌 지방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 중환자실에서만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사실 수술실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다행히도 함께 봉사를 하게 된 현민 선생님은 수술실에서의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간호사였다. 현민 선생님에게 기본적인 수술 물품들의 명칭을 배우고 수술 시 필요한 기구의 사용법을 배워 나도 수술을 보조하는 간호사로 참여하기로 했다.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하는 일은 크게 소독간호사(Scrub Nurse)와 순회간호사(Circulating Nurse) 두 가지로 나뉜다. 현민 선생님은 멸균된 수술가운을 입고 멸균영역에서 의사의 수술을 보조하는 소독간호사의 역할을 했다. 나는 멸균영역의 밖에서 수술의 과정을 지켜보며 수술 중 필요한 생리식염수, 봉합사 등의 물품이나 기구를 공급하는 순회간호사의 역할을 맡았다. 간호학생 때 책에서만 봤던 수술실 간호사를 하는 것은 중환자실 간호사로만 일했던 나에게는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처음 접해 보는 수술실 간호사의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중환자실 간호사의 일과는 색다른 업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소독간호사로 참여해 교수님의 바로 옆에서 수술을 보조해 보는 경험도 해 볼 수 있었다. 수술실 간호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철저한 무균술을 지켜는 것이었다. 수술기구를 준비할 때는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 했다. 오염된 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환자를 감염에 직접적으로 노출시켜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포장된 수술물품을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멸균되지 않은 부분에 기구가 스치듯 닿기만 해도 그 수술기구는 오염된 것으로 간주해 새로 준비해야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수술실 경험이 많은 현민 선생님 덕분에 금방 수술실 간호사의 업무를 익히고 적응할 수 있었다.    

 

수술을 통해 평생을 불편하게 달고 있던 혹을 제거한 사람들은 수술 후 아이처럼 신기한 눈으로 제거된 자신의 혹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봉사를 하며 힘들었던 고생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나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수술 이외에도 사람들의 혈압을 측정하고 혈당을 체크하는 기본적인 일부터 진료를 위해 사람들을 안내하고 약국에서 처방된 약을 탈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등 다양한 역할을 통해 의료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만 일하면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와 환경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나에게도 값진 경험이었다.     


뒤돌아보면, 봉사활동은 매번 간호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고 내면을 성장시켜 주는 커다란 자극이 돼 주었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봉사에 참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봉사는 나눔을 통해 항상 나를 성장시켜 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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