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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준 May 22. 2020

#17. 잊고 있었던 꿈에 대해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여느 날과 다름없이 중환자실에서의 고단한 근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도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 중환자실로 발령받은 후 어색하고 힘들게만 느껴지던 일들과 3교대 근무 생활도 많이 익숙해졌다. 어느덧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일한지도 1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무런 목표의식 없이 그저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텨 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내가 진정 원하던 꿈이 이런 삶이었나?’     


고등학생 때는 수능이 인생의 전부일 것만 같았고 대학생이 됐을 때는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꿈이자 목표였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항상 남들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춰 사회나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위해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꿈이라는 존재는 그저 인생에서 이뤄야 할 하나의 과업이 되어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하고 싶은 꿈이 어떤 게 있을까?’     


곰곰이 나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 둘 잊고 있었던 꿈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사하라 사막 마라톤이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책에서였다. 책에 실려 있는 사진 한 장에는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사하라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그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나도 언젠가는 사진 속의 사람들처럼 사하라 사막을 멋지게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살면서 한 번쯤은 사막 마라톤에 도전해 봐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졌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활 때는 많은 꿈을 꾸며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많은 꿈들을 까맣게 잊고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다. 문득, 조용히 눈을 감고 광활한 사하라 사막을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잊고 지내던 꿈에 대한 두근거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두근거림은 한동안 내 삶에서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정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꿈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 같다고.     


대학생 시절, 4년간 3개의 대학생 봉사단과 교내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나눔의 가치를 여러 번 경험했던 나였기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소홀해진 나눔과 봉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광활한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사막 마라톤은 오랜 시간 꿈꿔 온 꿈들 중 하나였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은 매년 4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백여 명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대회였다. 문득 ‘그 정도 규모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면 기부, 나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인 사하라 사막 마라톤과 불우한 이웃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연계하여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로 결심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아무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은 어드벤처레이스 회사인 Racing The Planet에서 개최하는 4대 사막 마라톤(4 Deserts)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 4대 사막 마라톤에는 중국의 고비사막,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남극 그리고 나미비아에서 개최되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이 있다. 참가자는 6박 7일 동안 필수 장비만을 가지고 외부의 도움 없이 250km의 나미비아의 광활한 사막을 달려야 한다. 총 250km의 구간 중 이틀 동안 80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구간과 정규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를 달리는 구간은 매해 포함된다. 경기에 필요한 모든 장비(7일치 식량, 의류, 침낭, 의약품 등)는 참가자 각자가 준비하여 배낭에 짊어지고 달려야 하는 서바이벌 마라톤이다. 매일 필요한 양의 물과 몸을 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숙박용 텐트만이 참가 선수에게 제공된다. 대회 코스는 일정 간격으로 모래 위에 작은 깃발을 꽂아 표시한다. 하지만 광활한 사막에서 길을 잃을 것을 대비하여 나침반과 호루라기, 응급 보온포 등이 필수 장비로 지정되어 있다.     


참가자들이 6박 7일간 메고 달려야 하는 배낭의 평균 무게는 10~15kg에 달한다. 더군다나 평균기온이 40도에 달하는 사막에서의 마라톤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갈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에 대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극한의 상황에 내 자신을 던져 보고 싶었다. 누가 보면 고통을 즐기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내가 아닌 극한의 상황에서의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아마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사막 마라톤과 함께 진행할 예정인 크라우드 펀딩은 나에게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말 그대로 군중(Crowd)으로부터 자금을 조달(Funding) 받는다는 뜻이다. 자금이 필요한 개인 및 단체가 웹 네트워크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크라우드 펀딩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알아보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모금을 진행하기에는 크라우드 펀딩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을 한다면 어떤 이들에게 도움을 주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사실 얼마나 모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모금된 금액이 조금이라도 값진 곳에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병원에서 근무하며 바라본 환자들 중 가장 마음이 아린 환자들은 소아암 환우들이었다. 소아암은 소아에게 발생한 악성 종양을 부르는 말로 보통 병세의 진행이 빨라 발견 즉시 수술 혹은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등을 해야 하는 질병이다. 아프다는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이 살아온 날들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며 힘들게 투병하는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끊임없이 꿈꾸고 환하게 미소 지어야 할 나이에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을 보며 꼭 그들의 꿈과 환한 미소를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아암을 앓고 있는 환우들 중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에게 이번 모금을 통해 모인 금액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에 대한 것이라면 그러한 즐거움은 배가 된다.무엇인가를 꿈꿀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루살이처럼 살던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자 큰 기쁨이 되었다. 더욱이 꿈꿔 왔던 일들을 조금씩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나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리는 설렘과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아직 어떤 것도 정확히 정해진 것이 없었지만 무료한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나의 일상에 뜨거운 불을 지펴주기에는 충분했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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