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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준 May 25. 2020

#18. 사하라 사막으로 가겠습니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과연 내가 병원을 그만두지 않고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나갈 수 있을까?’     


사막 마라톤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나서 가장 처음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었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을 생각해 보면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사하라 사막 마라톤은 250km의 구간을 6박 7일 동안 달리는 경기이기 때문에 순수한 경기 기간만 일주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회 개최지인 아프리카 나미비아까지는 2번의 환승과 3번의 비행으로 이동 시간만 하루가 필요하다. 왕복으로 하면 2일이 된다. 또한 예기치 못한 변수와 시차 등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2일 정도 일찍 개최지에 도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기 후의 일정과 귀국 전 최소한의 휴식을 위해 3일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을 계산해 보면 약 2주의 휴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2주라는 시간은 사하라 사막 마라톤 출전을 위한 정말 최소한의 기간이다.


직장에서 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일을 하며 2주를 휴가로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말이다. 물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은 신혼여행을 위한 휴가도 2주가 채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휴가 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2주라는 기간을 휴가로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막 마라톤에 나가기 위해 내가 신혼여행을 간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회 참가를 위한 휴가를 받는 것은 사막 마라톤에 출전하기로 결심하는 

동시에 마주하게 된 너무나 큰 현실적인 장벽이었다. 아무리 대회에 나가려고 굳은 마음을 먹어도 참가할 시간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가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시작도 못해 보고 이렇게 끝나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가 진정 원하는 꿈은 마음속에 품어 둘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일단 주변 사람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들어 보기로 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사막 마라톤과 소아암 기부 프로젝트에 대한 내 계획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 봤다. 그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더욱 부정적이고 참담했다.


“현실적으로 2주라는 긴 오프를 받을 수 있겠어?”

“왜 네 시간과 돈까지 들여 가며 거기까지 사서 고생을 하러 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허무맹랑한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처럼,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대부분 이런 부정적인 의견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가능할 것 같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오히려 오기가 생기고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에 어디서 그렇게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인지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내 주관에 따라 용기 있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나에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봐, 해 보긴 해 봤어?”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이 했던 유명한 말이다. 이 짧은 한마디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지금 상황의 나에게 매우 강렬하게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일을 할 때 시도해 보기도 전에 덜컥 겁을 먹거나 지레 안 된다고 스스로 단정지어 버리곤 한다. 어떤 일이든 본인 스스로가 한계를 정해 버리는 순간 실제로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어쩌면 나에게 조언해 주었던 지인들의 말처럼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일단 부딪쳐 보고 싶었다. 부딪쳐서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꿈을 위해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수간호사 선생님을 납득시켜 사막 마라톤 출전을 위한 휴가를 받을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수간호사 선생님을 찾아가서 “저에게 꿈이 생겼어요. 사막 마라톤에 나가고 싶으니 2주만 휴가를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생각 없이 찾아간다면 승산이 없을 게 불 보듯 뻔했다. 부딪칠 때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부딪치는 지가 중요했다.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일주일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통 사막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한 휴가 생각밖에 없었다. 기나긴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바로 내가 하고

자 하는 사막 마라톤과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기부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서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나가고 싶은 이유, 나가고자 하는 사막 마라톤에 대한 정보, 그리고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기부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등을 제안서로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어떠한 형식도, 두서도 없이 써 내려간  A4용지 15장 분량의 제안서


그렇게 며칠 밤낮을 고민하며 무엇인가에 홀린 듯 제안서를 채워 나갔다. 어떠한 형식도, 두서도 없이 써 내려간 나의 제안서는 어느덧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A4용지 15장 분량의 제안서에 소중한 꿈을 정성스럽게 꽉꽉 눌러 담았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제안서가 탄생했다. 바로 프로젝트 명 ‘사하라 사막에 피는 꽃’이었다. 사하라 사막 같은 황량하고 척박한 장소에서 억세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처럼 나의 꿈도, 소아암 환우들의 꿈도 모진 모래바람을 견디며 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프로젝트 명을 지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

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이라는 나의 잊고 있었던 꿈을 실현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아암 환우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또한 나처럼 먹고 사는 것에 바빠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잊고 사막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으면 했다. 


사하라 사막에서는 과연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날 수 있을까?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며칠 밤낮 동안 고생해서 완성한 제안서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간호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똑똑똑, 방문을 두드린 후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모습으로 비장하게 수간호사 선생님 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숨소리도 죽인 채 수간호사 선생님에게 다가가 A4 15장 분량의 종이 뭉치를 일급기밀문서라도 되는 것처럼 슬며시 건넸다.종이 뭉치 첫 장에는 ‘제안서’라는 글씨가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정체불명의 제안서 종이 뭉치를 받아 든 수간호사 선생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일을 시작한지 1년도 안 된 갓 신규 티를 벗은 내가 당돌하게 장기 오프를 받기 위한 제안서를 준비해 갔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아마 수 선생님도 오랜 병원 생활을 하며 갖은 풍파를 겪으셨겠지만 이런 경우는 분명 처음이었으리라. 


나도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간호사 선생님이 상황을 파악하고 제안서를 확인하는 동안 이어진 얼마간의 침묵이 나에게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제 결과가 어떻게 되든 활시위는 당겨졌다. 찬찬히 제안서를 읽어 보신 수간호사 선생님은 나를 보시더니 씩 미소를 지어 주셨다.이렇게 긴 휴가의 경우는 조금 더 병원 차원에서 회의를 해 봐야 하겠지만 다행히 사막 마라톤 출전을 위한 휴가를 받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 수간호사 선생님 앞이라 표현은 못했지만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나는 광활한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고생했던 시간들이 결코 의미 없는 헛된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모두 다 안 된다고 말했을 때 나도 그들과 똑같이 생각했다면 아마 제안서를 작성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당연히 대회 출전을 위한 휴가 또한 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며 자신이 원하는 꿈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가슴 뛰는 꿈에 도전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이 단순히 꿈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 나는 그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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