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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로 Dec 10. 2023

똥 묻은 고양이

우리 고양이 별명은 루이에똥

고양이 용품을 하나 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고양이 화장실, 고양이 사료, 스크래쳐, 식기, 두부모래, 츄르까지...... 첫 아이를 낳기 전 출산준비물을 구비할 때의 설렘과 기쁨 그것과 같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집사들처럼 고양이를 운명과 같이 맞이할 것을 기대하고 기대했다. 내게는 우연히라는 운명의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십춘기 아줌마의 소심한 반항으로 고양이 입양은 갑작스레 결정되었다. 생후 6주 된 고양이가 무시무시한 우연을 이기고 우리 집 셋째가 되어 온 것이다. 그 많은 고양이 중에서 루이가 우리 집에 왔으니 이 또한 운명이다. 우리 가족이 될 운명.

고르고 고르다 선택된 우리 고양이 이름은 홍루이 14세.

루이 14세 왕처럼 군림하며 오랫동안 살라고 사춘기 아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태어날 때부터 루이를 돌봐주던 집사님이 루이를 보내며 내게 말했다.

"어른 사료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려요. 혼자서도 잘 노니까 걱정 마세요."


'아기 고양이가 화장실을 가린다고?'

화장실에 대한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았던 초보집사는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아기가 화장실을 가린다.


집에 온 루이는 오자마자 소파 아래로 몸을 숨기더니 곧 담요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잠시 후 벽 쪽으로 다가가더니 울기 시작했다.


"왜 자꾸 울어?"

"엄마 보고 싶어?"

"배가 고파?"


알아들었을 리 없는 루이는 그 자리에 소변을 보았다. 엄마가 보고 싶은 건지?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계속된 애처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루이는 세 뼘 간격으로 계속 소변을 보았다. 헉 어쩐다.

아기 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없던 나는 혼자 있을 고양이와 닦이지 않을 소변을 걱정하며 출근해야 했다.


혼자 있을 루이를 위해 학교를 마치자마자 뛰어온 아들이 내게 전화했다.


"엄마! 우리 집에도 이제 고양이 냄새가 나~"

"그래? 그래서 좋아?"

"응~~"

"잘 돌봐주고 있어~"

"응~"


집에 돌아와서 확인한 고양이 냄새는 고양이 똥 냄새였다.

소파아래 몰래 싸둔 똥을 발견하지 못한 아들이 똥냄새를 고양이 냄새로 착각한 것이다. 아뿔싸. 우리 집 로봇청소기는 무용지물이 될 모양이다. 똥을 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날 우리 루이의 별명은 '루이에 똥'이 되었다.


남집사는 루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모래를 파내는 모습을 여러 차례 시범 보였다.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루이의 만행을 휴지로 닦고, 알코올로 소독하며 루이를 항변했다. 내리사랑은 어쩔 수 없는 진리인가 보다.


루이의 만행을 닦은 휴지를 화장실 모래에 올려두고 말했다.

"여기가 너의 화장실이야~루이. 여기서 똥을 싸야 한다고~"



천재인 우리 루이는 이틀 후 정말로 화장실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엉뚱한 곳에 똥을 파묻긴 했지만 파서 덮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후 6주 차 아기고양이가 보인 천재성에 우리 가족은 환호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루이는 전 집사님 댁에선 베란다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한다. 문 앞에 서서 야옹거리면 화장실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우리 집에 온 루이가 하염없이 문 밖을 바라보고 야옹거린 이유였다. 참으로 똑똑한 루이가 아닌가?


털이 복슬복슬한 루이는 아직도 똥을 자기 털뭉치 꼬리나 똥꼬에 묻히고 다닌다.

"으잉 똥냄새~"

딸과 아들의 똥만 기특한 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똥냄새는 우리 루이의 똥이다.


나의 루이에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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