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반했다.

피로연에서 병뚜껑 맞은 여자

by 동글로

25세.

친구가 일반적인 기준보단 이른 결혼을 한다. 친구의 남편도 연애 때부터 가끔 얼굴을 보아왔던 터라 나도 격이 없다.


잘 입지도 않던 투피스를 보세가게에서 구입했다. 친구 결혼식마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친구의 웨딩포토를 찍는 날 나는 들러리를 자처했었다. 늘 입던 트레이닝룩을 생각 없이 입고 갔다. 들러리라 괜찮겠지? 생각했다. 신부와 내가 한 컷 찍히기 전까진. 오랜 공시생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나는 늘 돈이 없다. 늘 가난하다.


투피스와 구두를 신은 내 모습은 제법 어른 같고 이뻐 보인다. 평소의 모습도 아니다. 최대한 단정하고 학생 같지 않은 모습으로 변장했다.


아름다운 부부는 결혼식을 마치고 현금 30만 원과 아파트 열쇠를 내주었다.


가난한 친구들이 넉넉한 피로연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고, 신랑의 친구들이 고주망태가 될 것을 대비해 신혼부부의 아파트까지 제공해 준 것이다.


무리들이 하나 되어 커피숍을 갔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어수선하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색함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잘못 없는 새신랑의 엉뚱하고 재밌는 과거가 새어 나오고 같이 웃었다. 그럼에도 '집에 갔었어야 했다.'라고 후회한다.


2차를 간단다.

몇몇은 선약을 핑계로 그 알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을 빠져나갔다. 나는 우유부단하여 먼저 간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번엔 호프집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어랏! 좀 전에도 있었나? 못 봤던 남자다.

정면에 앉은 남자.

서울말을 쓰는 남자.

얼굴이 하얀 남자.

그 남자 얼굴 주위만 훤하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저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겠지?'


서울말을 쓰는 다정한 남자는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의 남자들은 말투가 투박하고 다정함은 안드로메다에 있다.


호프집 음악소리, 주변사람들의 안부인사가 뒤섞여 그나마 커피숍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딱!"

소리와 함께 맥주병뚜껑이 내 이마를 때렸다.

"아!"

소리와 함께 모든 이의 이목이 집중됐다. 고요해졌고 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상황이 몹시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저 멀리 앉은 제일 시끄럽던 남자가 맥주병을 요란하게 땄나 보다. 그 시끄럽던 남자는 그 후로 줄곤 옆에 붙어서 촐싹댔다. 자꾸만 내 핸드폰 번호를 요구한다. 기분 상하지 않게 하는 거절은 무엇일까? 오래 고민했다.


병뚜껑을 맞은 후엔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지성인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은 척하는 여자를 서울말을 쓰는 그 남자가 귀여운 미소와 함께 쳐다본다. 기분 나쁘지 않다.


'뭐지 저 남자. 왜 웃어?'


"이 친구는 한 달 전에 헤어졌데요~"

그 남자 옆에 앉은키 작은 남자가 똑같은 서울말을 쓰며 말했다. 또 조용해졌다. 서울말을 쓰는 남자가 당황하는 것과 상관없이 괜스레 기분이 좋다. 어색한 이 상황이 싫지 않아 졌다.


'그 남자는 여자친구가 없다. 히히히 '


호프 집을 나와 저녁을 먹고, 보드게임방, 노래방까지 갔다. 점점 사람은 줄어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했고 불쌍한 IMF세대들임을 확인했다. 금세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는 현란한 보드게임 실력을 보였고 그 남자는 매우 감탄했다.


서울에서 산다.

프로그래머다.

나이는 4살 많다.

나와 같은 대학교를 나왔다.

내가 알게 된 그 남자의 정보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변덕스러움이 발동했다. 이제는 헤어짐이 아쉽다.

서울말을 쓰는 그 남자가 저쪽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왜 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나는 전화번호를 불러주었다.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작동한 것이다.


시끄럽던 그 남자에겐 미안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