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실 직원 4명 중 두 분이 새로운 곳으로 발령이 났다. 원하는 근무지로 발령이 난 덕에 긴장했던 당사자들도 지켜보는 나도 깔끔한 크리스마스연휴를 보낼 수 있게 됐다.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여전히 이곳에 남아야 하는 나는 머리도 마음도 복잡하다.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해야 한다. 18년간 이런 일을 매년 겪지만 늘 새롭다.
현재 행정실은 미혼자 3명과 기혼자 1명이다.
40대 후반, 50대 후반, 30대 초반 이들 세분은 미혼이다. 40대 중반인 나만 기혼이다. 기혼자로서 엄마로서 어쩌다 보니 결혼을 당연시하는 젊은 꼰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구성원의 상황을 처음 알았을 땐 몹시 난감했다. 내게 배려를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들을 배려해야 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꼰대기질이 나타난 것이다.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은 부부, 이혼한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였던 사람들과 근무를 한 적은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곳에서 근무하기는 처음이었다.
자녀 문제를 꺼내거나 남편과 시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될 것 같은 판단이 들었다. 공감할 수 없는 그 대화가 얼마나 불편할까? 이런 내게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도 있다.
'누가 배려 하랬나?' 쓸데없는 나의 배려였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정과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에겐 두 가지 일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집에서는 사무실 일을 넋두리 삼기도 하고 사무실에서는 엉뚱한 가족의 일들을 에피소드 삼아 말하기도 한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도마 위에 올려놓기도 했고 아이가 했던 웃지 못할 재롱들을 이야기하며 다 같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사적인 이야기만 공유할 수도 있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사적인 이야기는 줄였다.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이야기는 줄여야 하는 게 맞다. 꼰대의 길로 가는 나는 하나씩 배워간다.
처음엔 궁금했다.
결혼을 못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음을 선택한 것인지?
모두 후자였다.
이번엔 이유가 궁금했다.
왜 하지 않음을 선택한 것인지?
그들은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단 한 사례도 보지 못해 결혼을 포기했다고 했다. 의문이 들었다. 왜 없다고 생각하지? 나는 이 답을 듣고 당장에 큰 소리로 말했다.
"왜 그런 부부가 없어요? 제 주변엔 많은데요?"
"누가 행복해요?"
"저요! 우리는 행복한데요?"
"진짜요? 행복해요? 매일 싸우지 않아요?"
"싸우는 것도 부부죠! 어떻게 맨날 좋기만 해요"
더 이상의 언급은 불필요했다.
결혼을 장려하거나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소리를 할 순 없었다. 결혼생활이 많이 힘들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설득할 자격도 의무도 없다. 젊은 꼰대가 나서기엔 무거운 주제다.
그들이 행복한 삶을 선택했으리라 믿는다. 결혼이 꼭 답이라고는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 편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깊은 안도감이 있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다. 젊은 꼰대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