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갇힌 아버지의 해방일지

해외여행 갑니다.

by 동글로

나는 육지에서 배로 1시간 거리 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여전히 그 섬에 살고 계신다.

"너희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도시에 가서 살아라"

"아빠는 공부가 하고 싶어도 못했다. 할아버지가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어. 그것이 아빠 평생의 한이다" 아버지가 술을 마신 날은 어김없이 어린 우리에게 저렇게 말씀하셨다.


어린 우리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레퍼토리였다. 세상에 맙소사 공부에 한이 맺힌 아버지라니?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으셨을까?


지금은 이해되는 아버지의 말들은 어른이 된 내게는 너무나 가슴 아픈 말이다. 아버지 어린 시절의 교육환경은 어땠을까? 섬에서의 교육환경은 내가 상상하지 못할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의 교육열 덕에 자식들은 섬에서 탈출했다. 나는 중학교까지 섬에서 살았고 고등학교 이후로는 육지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는 육지에서 살고 있는 자식 넷을 위해 섬에서 일해야 했다.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해야 했기에 섬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배운일이라고 섬일이 전부이니 매달 들어가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뱃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버지는 단 한 번의 일탈도 없으셨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아 일탈의 욕망을 꾹꾹 누르고 사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표본적인 아버지의 삶이었다.


그렇다면 아버지 개인의 삶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버지 개인의 삶은 없다. 늘 가족을 위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삶만 있었을 뿐이다.


작년 어느 날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도 자연스레 아버지가 떠올랐다. 책에 나온 빨치산 아버지는 죽음을 통해 빨치산에서 해방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의 해방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무엇을 통해 아버지가 해방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는 작년부터 뱃일을 그만두셨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셨던 아버지가 스스로 배를 팔고 뱃일을 접었다. 부모님이 바다에서 일한다는 불안함 마음은 사라졌다. 그러나 일거리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마음은 몹시 헛헛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이것이 아버지의 해방이 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아버지 사이 일화를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가 해방되었음을 알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가정법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아버지의 장례식에 있다면? 가장 후회로 남는 일이 무엇일까?

바로 생각난 것이 있었다.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가자.


해외여행을 갈 때면 부모님께 늘 전화를 드렸었다. 나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면 섬에 있는 부모님은 수많은 상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러기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경험하지 않았지만 나의 자녀들을 생각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아빠! 나 대만 갔다 올 거야~!"

" 대만~좋겠다. 나는 언제 한 번 비행기 타보나~"

" 같이 가면 되지!"

" 바쁘다. 다음에 같이 가자. 잘 다녀오너라" 늘 마다하던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뱃사람들은 안다. 바다의 물때라는 것이 참으로 미묘하여 아버지의 발목을 잡곤 했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게 만든다.


그러던 아버지가 작년 봄 분신과도 같은 배를 팔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아빠! 우리 같이 방콕 갈까?"

"응 그러자"


예전과는 다른 생각지도 못했던 흔쾌한 답변이었다.


"진짜다? 나중에 말 바꾸면 안 돼!"

"응 가보자~"


그래서 이번 겨울 섬에 갇힌 아버지가 탈출한다. 아버지에겐 일생의 터전인 섬이 내겐 아버지가 갇힌 것 같은 섬이다. 아버지에게 며칠이나마 섬에서의 해방을 선사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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