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남편이 만든 아침 샐러드
그저 행복한 아내의 아침
2022년 봄 무렵 갑자기 정신을 놓을 것 같은 순간이 왔다. 아. 이러다 죽는 건가? 짧은 순간이지만 절망적이었다.
난생처음 뇌 MRA, MRI 기계 통속으로 들어갔다.
대학병원에도 가고 근처 이비인후과도 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번아웃이었던 것 같다.
밥도 먹기 싫고 맛도 모르겠다. 어깨엔 고릴라가 누워 있는 것 같은 무력감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번아웃이라고 추측해 본다. 어쨌거나 그것은 추측이다. 정확한 진단명을 어디에서도 받지 못했다.
지인 추천으로 동네 신경과를 가게 되었다. 두통과 이명이 같이 왔기 때문이다. 몇 번의 약 처방을 바꿔가며 복용을 했다. 위약효과일지 모르나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나의 주치의로 임명되었고 믿을맨이 되었다.
오~효과 있어. 무슨 약일까? 검색해 봤다.
과연 이약은 어떤 종류의 약인가?
'항 우울제'
띠리리~우울증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정신이 맑아지는 약이라고 했는데? 항우울제라니? 내가 우울증이라고? 단 한 번도 우울증이라고 언급하지 않으신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내가 우울증을 앓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프면 변하기 마련이다. 아프기 시작하고 지금껏 방치한 몸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나는 짐을 조금씩 놓아두겠다고 결심했다.
직장에서는 가볍던 엉덩이를 조금은 무겁게 하기.
집에서는 직접 하는 요리대신 반찬배달하기.
잠시 놓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와 동시에 우리 남편이 달라졌다. 우리 가족에겐 혁명 같은 일이다. 아침마다 샐러드를 식탁 위에 내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 이틀 하다 말겠지. 예전처럼 국에 밥을 휘리릭 말아먹고 가면 더 빠르고 간단한데 며칠이나 하겠어?'
생각은 그리 했으나 아내는 정성에 감격했다. 남편의 샐러드는 갈수록 풍성해졌다. '이렇게 먹다가는 살이 통통 찌는 건 아닐까? 코끼리도 풀만 먹고 큰 덩치가 된다는데' 이런 걱정이 될 만큼 넉넉한 아침 식사였다.
국에 말아진 밥을 먹는 시간은 차리고 다 먹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었다.
샐러드는? 그렇지 않았다. 채소와 과일은 꼭꼭 씹어먹어야 했다. 빵은 통밀빵이라 기존의 달콤하고 쉽게 넘어가는 빵과 달랐다. 스르르 녹지 않는 빵. 계란을 삶거나 훈제계란을 두 판씩 사두고 계란도 하나씩 까주었다.
건강을 되찾은 지금 훈제계란은 내가 만든다. 조만간 통밀빵도 만들어 먹기 위해서 통밀가루도 사두었다. 남편의 배려가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한다. 망할 번아웃 따위 저 멀리 꺼져버려라.
9개월간 먹던 약을 중단했다. 2달이 지난 지금도 괜찮은 걸 보면 회복이 된 것도 같다. 그러나 전과 같이 슈퍼 우먼이 될 생각은 없다. 엄마가 건강해야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
남편의 아침 샐러드는 2년째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혼자만의 시간을 아침식사시간 전까지 누릴 수 있게 됐다. 루이(고양이)가 나를 깨물면 미라클모닝을 완성하며 일어난다. 그다음엔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직접 씻고 다듬어 차려준 완벽한 남편의 아침식사가 곧 나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