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능이 없는 채로 보이는 건 바다와 뒷동산이 전부인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이 섬 탓이라고 하긴 미안한 말이지만 나이가 들어도 어쨌던지 핑계를 찾아 둘러대고 싶은 인간이라 굳이 찾아낸 핑곗거리이다.
재능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은 곧잘 생기곤 했다. 불행히도 재능이 없는 것에 더해 의지력도 실행력도 참으로 약한 사람이다. 재봉틀로 옷 만들기, 떡케이크 만들기, 재테크하기, 글쓰기등 하고 싶은 일들은 한 번씩 또 다해 본다. 해봐야 아쉽지가 않다. 물론 길게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러다 우리 집에 루이(내 소중한 고양이)가 왔고 나는 또다시 만화를 그리고 싶어졌다. 졸라맨 그리기 수준의 만화도 그리지 못하는 내가 만화를 그리고 싶다니 어쩌란 말인가.
그루밍이 잘 못된 루이
낚서이지 만화인지 모를 끄적임을 보던 직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아 초등학생처럼 잘 그리네요?"
초등학생? 그러나 그렇게 말할 때조차도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나의 그리기 실력은 유치원생들과 비슷할 것 같기 때문이다.(사실 유치원생 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지만..... 그 전은 신생아라서)
루이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왔고 루이와 함께한 기억을 오랫동안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나를 기록하는 것은 사진과 글쓰기로도 가능하지만 귀엽고도 재밌는 우리 루이의 순간적인 모습을 그리기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만화 그리고 싶어~"
"그래? 집 앞에 미술학원 다니지 그래?"
그래서 간간히 동네 학원을 알아보았다. 섬은 탈출했지만 지금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작은 소도시다 보니 미술 학원이라고는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원이 대다수였고 성인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은 마감시간이 7시였다.
직장에 다니는 내가 다니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인강을 들을까 생각도 했지만 내게 맞는 인강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찾기 쉽지 않다는 말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책? 그래서 무작정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 교과서를 구입했다. 어쩐지 교과서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책이 도착했고 들뜬 마음으로 몇 가지 그림을 따라 그리고 나니 '난 정말 재능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구나'
의지력이 없는 내게 가장 좋은 카드는 '작심삼일'이라는 단어다.
모든 일에 작심삼일인 의지박약인 나는 그 첫날을 시작했고 작심삼일이 지나면 또다시 작심삼일을 만들면 된다.
책에 나온 만화를 무작정 따라 그려 보았다. 책을 보지 않고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주차할 때도 공간지각이 약한 나는 머릿속으로 동작을 상상하는 것도 엄청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이 되는 모양이다.
언젠가 루이의 모습을 생각하는 대로 그려지는 그날까지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내게도 쨍~하는 날이 찾아오기는 할까?
책을 읽고 난 다음 알게 된 것이 있다.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만화를 잘 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 유명한 유전자의 힘을 믿었다.
그러나 데츠카 오사무 만화가 역시 만화 밑그림을 그리고 수정하고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하여 만화를 완성해 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많은 수정과 반복을 하다 보면 언젠가 마음 가는 대로 그릴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루이야 딱 기다려~~
엄마가 루이 잘 그려볼게~
내 사랑 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