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글을 종종 읽어왔다. 딸이 초등학생일 무렵 글을 발행하고 누군가 읽어 주는 희열감에 딸과 아들, 남편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 이후부터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 사생활이 없는 느낌이랄까.)
딸은 지금 중3이 되었고 지금도 엄마가 쓴 글을 종종 읽는다. 달라진 건 딸이 조금 성장한 것 밖에는 없다.
사사롭고 소소한 일상의 글을 쓰기도 하지만 생각이 복잡할 때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럴 때 쓰인 글들엔 엄마의 옹졸한 생각이 담기기 마련이다. 글을 쓰고 읽어보면 딸보다 엄마가 마음이 좁은 것 같아서 민망하다. 왠지 엄마의 생각을 몽땅 딸에게 들키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노력하는 F가 가끔 발현되는 확실한 T의 성향인 딸은 아빠를 닮았다.그런 딸은 발행된 글을 읽고 내 생각을 다시 묻기도 하는데 꼭 숙제 검사 같다.
글을 쓰려다 보니 나의 일상을 더 자세히 보게 됐다. 내 생활 패턴은 회사, 집, 줌바, 지인과의 수다, 가끔 있는 약속. 참으로 단조롭다. 그런 삶이 전부인 내게 글의 소재들은 나의 허점투성이인 무언가 들뿐이다. 그런 글을 쓰자니 딸 보기가 민망하다. 그렇다고 솔직하지 않은 글은 또 써지지가 않는다.
엄마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린 딸이 읽으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나의 사고방식 때문에 딸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치진 않을까? 염려가 된다. 딸에게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잔소리하면서 정작 나도 딸과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한다. 그럼에도 나의 중요한 소재인 딸과의 일상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내게는 너무나 커다란 부분이다. 이상하게 요즘은 딸에게 혼나는 엄마 같다. 어른은 나인데도 말이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딸이 자기가 무얼 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성인이 된 나도 지금까지 뭘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도 모르겠는데 너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쉬운 질문 같은데 답하기는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게나? 딸이 무얼 하면 좋을까?
대부분의 상위권 학생들이 꿈꾼다는 의사가 되면 행복할까?
흔히들 부러워하는 변호사가 되면 행복할까?
복지와 연봉이 좋다는 대기업이라면 행복할까?
가늘고 길지만 안정적이라는 공무원이라면 어떨까?
직장 생활하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행복한가?
자영업을 하면?
프리랜서를 하면?
그것도 아니면 작가?
살아보니 직장과 행복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없다.
진짜 행복은 소소한 것에서 온다.
그래서 딸이 무얼 하면 좋을까?
엄마인 나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시 묻는다.
그래서 제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쳐요.(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그래서 엄마는 내가 뭐가 되면 좋겠어요?라고 다시 묻는다.
사실은 뭐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건 아직 명확히 없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연과학을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엥? 자연과학?
예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내가 20세일 무렵 자연대 대학원 조교 언니 수업을 듣은 적이 있다. 언니는 28세였기에 20세인 나에겐 꽤나 어른이었다.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게 부럽다는 말을 했다.
너는 좋겠다.
뭐가요?
어려서 뭐든지 할 수 있잖아. 나는 이제 이길로 들어서서 다른 것을 시도한다는 건 어렵거든......
왜요? 다른 거 또 하면 되잖아요.
나를 뭣도 모르는 애송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웃고 말았던 기억.
딸은 왜 자연과학을 연구하고 싶을까?
그 조교 언니는 왜 연구하는 게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을까?
자연과학을 연구한다고?
하다가 다른 걸 하고 싶을 수 있을 텐데?
불쑥 떠오른 기억으로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딸은 쿨하게 답했다.
그럼 그때 다른 거 또 하면 되죠.
나도 조교언니 같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도대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그것도 아니면 진로가 확실한 것을 하라고?
아니면 너만 행복하면 된다고?
행복과 직업은 별개인데 행복한 직업을 꿈꾸는 내가 이상하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다 선택은 너의 몫이고 책임 또한 같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