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이런 상태다.
괜찮아졌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고,
예전처럼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는다.
다만, 나를 괴롭히지 않는 쪽을 선택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2025년 8월, 아주 뜨거웠던 날
[예술 너 때문에 더럽게 힘들다]라는 글과 함께 나는 2주 휴재를 선언했다.
사실은 휴재라기보다 도망에 가까웠다.
일부러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모든 걸 텅 비워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자
마음속 깊은 곳에 눌러 두었던 것들이 생각보다 거칠게 올라왔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
꺼내고 싶지 않아 덮어 두었던 감정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 해가 바뀐 첫날이 되어서야
나는 조금씩 다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갓 태어나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아주 천천히...
멈추었던 그 사이 내 몸은 먼저 신호를 보냈다.
무기력해졌고,
나는 그걸 정신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나를 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6시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하루 종일 수업을 하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잠들었다.
그러다 한쪽 눈에 핏줄이 터졌다.
안과에서는 별문제 없다고 했다.
몸의 피로 때문일 거라고.
그때서야 20개가 넘는 투두리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하루에 하나를 해도
19개를 못 했다고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전부 지워버렸다.
앞으로는 한 일을 먼저 적고
그 하나에 나를 칭찬해 주기로 했다.
몇 주는 불안했고,
뒤처지는 것 같아 조급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없었는데
그동안 나는 그 목록들에 집착하며
내 마음을 스스로 고달프게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나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요즘은 일이 끝나면 그냥 잔다.
일부러 일찍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처음엔 무섭게 잠을 잤고,
이제는 충분히 자면 알아서 깬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괴롭지 않다는 감각이 아주 오랜만이라 조금 신기하다.
이렇게 멈추고 비우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이 아주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달리기.
사실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만,
진짜 싫어한다.
기록과 호흡과 자세와 평가에
사로잡혔던 기억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처럼 뛰는 게 아니라
처음 하는 사람처럼,
게으르고 설렁설렁 혼자 달려보려 한다.
고글도 준비했다.
아직은 날이 추워서 몸을 조금 사리고 있는 중이지만...ㅋㅋ
그림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림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해왔지만
정작 내 그림 앞에서는 늘 두렵다.
너무 많은 기준과 잣대가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로잡힘에서 자발적으로 풀려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자기 검열의 잣대를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을 놀이처럼.
과거의 일들도 다시 들여다봤다.
과거는 화석처럼 남아 있고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화석을 껴안고 사는 하루와
그 위를 딛고 오늘을 사는 하루 중
어떤 선택이 나에게 좋은 미래일지 묻는 질문 앞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요즘 나는 완전히 괜찮지 않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버티고만 있지도 않다.
밝은 마음으로 매번 향하지는 못하지만
그 방향으로 다시 고쳐 잡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이 연재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덜 괴롭히기 위한 기록이다.
요즘 나는, 이런 상태다.
다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던 시간을 조금 더 들여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