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의 시간을 죽여보기로 했다는 건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다.
나는 늘 도장 깨기처럼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할 일은 끝내야 했고,
끝내지 못하면 나를 설득하기보다 몰아붙였다.
그런 내가 아무도 모르는 절에 들어가
꼬박 3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자다, 멍하니 있다가, 다시 자고.
절 바닥에 몸을 철썩 붙이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처음엔 불안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았다.
내가 쌓아온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을 ‘보낸다’기보다 ‘죽인다’고 느끼는 동안
나는 살아 있었다.
아무 생산도 없었고
아무 결론도 없었지만
그냥 숨은 쉬어졌다.
이 선택의 계기는
아이 문제로 시작한 가족상담이었다.
상담을 받다 보니
자꾸 아이 이야기보다
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감정을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첫째는 조잘조잘 잘도 쏟아내지만
둘째는 나를 닮았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들여다봐야 할 문제처럼 느껴졌다.
상담을 이어갈수록
내 어린 시절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호출됐다.
꺼내고 싶지 않아 덮어 두었던 기억들.
기억에서조차 흐릿해진 장면들.
그걸 다시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괴로웠다.
서해안 뻘처럼
굳이 휘저을 필요 없었던 바닥을 건드려
진흙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느낌.
눌러두고 참고 있던 감정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때 나는 내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멈췄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절에서의 3일은 회복도,
깨달음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나를 확인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시간을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 시간 덕분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
멈추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조급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안다.
멈춘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
요즘 나는 아직 그 연습 중이다.
다음에는, 멈춘 뒤에 몸이 먼저 무너졌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