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돌아온 뒤
내 마음은 조금 잠잠해진 것 같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자꾸 무기력해졌고 나는 그걸
‘내가 약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나를 몰아쳤다.
이번에도 문제는 정신력이라 생각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108배가 끝나면 6시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몸이 무기력하니
몸을 더 써야 한다고 믿었다.
7시 반부터는 오전 외부 수업,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 성인 수업,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저녁 수업.
밤 10시가 넘어서야
일과 관련된 업무를 정리했고
거의 12시에 잠들었다.
이 생활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한쪽 눈이 이상했다.
핏줄이 터져 눈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놀라서 안과에 갔지만 의사는 말했다.
눈에는 별문제 없다고.
멍든 것 같은 거라고.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렇다고.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눈은 괜찮아졌다가
다시 빨개지기를 반복했다.
그제야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이건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는 걸.
그때 20개가 넘는 투두리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 하나를 해도
열아홉 개를 못 했다고
나는 나를 바보처럼 늘 몰아세우고 있었다.
매일 써야 하는 블로그,
매일 하지 않으면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규정하던 기준들.
그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그제야 인정했다.
그래서 투두리스트를 전부 지워버렸다.
다 하고 나서 체크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한 일이 있으면
그 뒤에 적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한 가지에 나를 칭찬해 주기로 했다.
나에게는 꽤 과감한 변화였다.
그런데 며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흘러도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준으로 나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었느냐였다는 걸.
그걸 깨닫고 나니 나 자신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요즘은 그 말을 조금씩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다음에는, 나는 왜 나에게만 그렇게 엄격했는지 돌아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