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몸이 먼저 무너졌다

by 루아 Rua

절에서 돌아온 뒤

내 마음은 조금 잠잠해진 것 같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자꾸 무기력해졌고 나는 그걸

‘내가 약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나를 몰아쳤다.

이번에도 문제는 정신력이라 생각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108배가 끝나면 6시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몸이 무기력하니

몸을 더 써야 한다고 믿었다.


7시 반부터는 오전 외부 수업,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 성인 수업,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저녁 수업.


밤 10시가 넘어서야

일과 관련된 업무를 정리했고

거의 12시에 잠들었다.

이 생활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한쪽 눈이 이상했다.

핏줄이 터져 눈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놀라서 안과에 갔지만 의사는 말했다.

눈에는 별문제 없다고.

멍든 것 같은 거라고.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렇다고.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눈은 괜찮아졌다가

다시 빨개지기를 반복했다.


그제야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이건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는 걸.


그때 20개가 넘는 투두리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 하나를 해도

열아홉 개를 못 했다고

나는 나를 바보처럼 늘 몰아세우고 있었다.


매일 써야 하는 블로그,

매일 하지 않으면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규정하던 기준들.

그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그제야 인정했다.

그래서 투두리스트를 전부 지워버렸다.


다 하고 나서 체크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한 일이 있으면

그 뒤에 적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한 가지에 나를 칭찬해 주기로 했다.

나에게는 꽤 과감한 변화였다.


그런데 며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흘러도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준으로 나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었느냐였다는 걸.

그걸 깨닫고 나니 나 자신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요즘은 그 말을 조금씩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다음에는, 나는 왜 나에게만 그렇게 엄격했는지 돌아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