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 나는 왜 나에게만 B였을까

by 루아 Rua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의사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100점을 맞아야 하는 시험에서

95점을 맞았을 때

A는 말한다.

“95점이나 맞았네. 다행이다.”


B는 말한다.

“95점밖에 못 맞았어? 바보다.”


그리고 나는

타인에게는 늘 A였고

나 자신에게만은

늘 B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억울하기보다

아, 그래서였구나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겐

참 관대하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잘한 부분을 먼저 본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꺼낸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조금만 못해도

스스로를 몰아세웠고

기준에 못 미치면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항상 “충분했는지”만 남았다.


이게 바로

‘머스트 주의’라고 했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사고방식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었다.


7살 때

나는 생물학적 아빠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날 하루 종일

울고 또 울었다.


그때 엄마는 말했다.

“울면 바보다.

그러면 갔다 버릴 거다.

열심히 하지 않고

못하는 바보는 필요 없다.”


그날 이후

나는 울지 않으려 애썼다.

엄마 앞에서는 특히 더.


대신

잘하려고 했다.

1등을 해야 했고

100점을 맞아야 했고

끝까지 해내야 했다.


그게

나를 살게 했다고

오래도록 믿어왔다.


그래서 그 방식이

이렇게 나를 괴롭힐 줄은

정말 몰랐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서울대를 갔어도

수석이 아니면 바보라고 생각했을 거고,

서울대 수석이어도

하버드를 못 갔으니

또 바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웃음이 나왔다.

웃긴데, 너무 정확해서.


그제야 알았다.

내 문제는

어디까지 갔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서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구조였다는 걸.


그래서 나는

현재에 살지 못하고

늘 공중에 떠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이 생각을 자주 한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줄 수는 없을까.


“여기까지 온 것도

얼마나 다행이고

기특한 일이냐”라고.


아직은

잘 안 된다.

B의 목소리는 여전히 빠르다.


그래도 요즘은

그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A의 말도 따라 해 본다.


나는 왜

나에게만 B였을까.


지금은

그 질문을

처음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는 방식으로

붙잡아보는 중이다.


다음에는, 그렇게 버티다 결국 흔들렸던 시절의 나를 꺼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