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_ 성취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

by 루아 Rua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자리에 있었다.


서울의 4년제 미술대학교에 들어갔고,

실기 수석을 받았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강사로 일했다.

대치동에서는 수채화와 소묘를 가르쳤고

노량진에서는 발상과 표현을 연구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경로였을지도 모른다.

실력도 있었고, 일도 있었고, 인정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했고

아니, 더 촘촘해졌다.

이제는 누군가가 채점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먼저 점수를 매겼다.


잘 그린 그림,

잘 담긴 철학,

잘 사용한 기법,

잘 어울리는 색.


기준은 명확했고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그림을 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방식이든 어떤 재료든

그 사람의 선택으로 존중했다.

가르치는 일에는 확신이 있었고 즐거움도 있었다.


그런데

내 그림 앞에만 서면 몸이 굳었다.


같은 과 출신이자 캠퍼스 커플이었던

지금의 남편은 정반대였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즐기는 천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


나는 그 옆에서 왜 이렇게 다른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묶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너무 오래 가르쳤고

너무 많은 답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틀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점점 더 무서워졌다.


성취는 쌓였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고민은

미술이 좋으냐, 싫으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잘해왔는데 기쁘지 않은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답을 찾지 못했고

대신 더 몰아붙였다.

행복은 나중에 와도 된다고,

지금은 버텨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행복을 미룬 게 아니라

행복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은

그때의 나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본다.


성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취 말고

다른 언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그렇게 힘들었던 건 아닐까.


아직도

내 그림 앞에서는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두려움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방식의 흔적이라는 걸.


그래서 요즘의 나는

잘 그리기보다

덜 무서워지는 쪽을

조심스럽게 선택해 보는 중이다.


행복은 어쩌면

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그 선택 자체에

이미 포함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