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_ 니 맘이지 뭐

by 루아 Rua

중학교를 졸업을 앞둔 둘째 아이가

어제는 조금 고민스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반장인데

졸업할 때

장래희망을 적어 넣은 PPT를 만들어야 한단다.

그런데

뭘로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미술 전공자이고

수도권의 대형 프랜차이즈 입시미술학원을

15년 운영해 왔다.

그 눈으로 보자면

이 아이는 미술적 재능이 분명한 편이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미술 전공을 하고 싶지 않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중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운동에 재능이 컸고

신체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 국가대표가 꿈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태권도장 관장님과 엄마는

여자아이고 공부도 잘하니

굳이 운동을 시킬 필요가 있겠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나는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때

내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아무 의욕도 없었다.

그러다 사춘기가 왔고

나는 엄마 곁을 떠나고 싶었다.

대전에서 안양예고로 가서

백댄서가 되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꽤 허황된 꿈을 꾸었다.


그걸 그대로 말하면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으니

안양예고 미술과에

꼭 가고 싶다며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미술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미술학원 선생님이 말했다.


대전에 살면서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하니

대전예고에 가는 게

장학생으로 다니기도 좋지 않겠냐고.


엄마는

또 그 말에 설득됐다.


하지만 나는

안양예고에 가서

백댄서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그 제안이 싫었다.


“그냥 되는 대로 살겠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두고

우리 딸과 똑같이

장래희망을 적어야 했던 날,

내가 적은 건

‘아무거나’였다.


그 일로

교무실에 끌려가

무진장 혼났다.

끝내 말을 하지 않자

담임선생님이 대신 적어준

나의 장래희망은

‘직장인’이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내 인생 뭐 이러냐.’


그 기억이 떠올라

아이에게

내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난 너한테

아무 강요도 하고 싶지 않아.

니 맘대로 해.”


내 맘도

맘(mom)도

사실 처음이다.

내 삶조차

뭐가 옳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 아이에게도

그냥 맘대로 생각해 보고

헷갈리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참 무책임한 엄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 삶을

조금씩 책임지고

끌고 가는 힘을

키워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엉뚱한 생각도,

방황도

다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내 맘도 잘 모르는

맘(mom)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아직 이 정도다.


“니 맘대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