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2월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정부지원 사업을 운영하며
살아온 시간이 벌써 10년 가까이 되다 보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몸이 먼저 기억해 낸다.
10월쯤이면 정산의 압박이 시작되고,
곧이어 다음 해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자연스럽게 마음도 불안해진다.
그래서 정신과 선생님께 물었다.
이 압박에서 벗어나는 비법 같은 게 있느냐고.
의사 선생님은 한마디로 정리해 주셨다.
“그게 사는 맛이여.”
“네… 요?”
그런가요…?
선생님은 오히려 되물으셨다.
그런 압박이 가장 큰 사람들은 누구겠느냐고.
워낙 많겠지만,
큰 회사를 이끄는 CEO들은 자신의 선택 하나에 몇천억,
몇 조가 오가는 사람들 아니겠느냐고.
그렇게 비교해 보면,
내 선택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회사에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다가
나와 치킨집을 차렸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서라고.
반면 나는 그 ‘힘든 방식’을
먼저 선택해서 오래 해온 사람이니,
익숙해진 거고.
그걸 ‘사는 맛’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덜 휘둘릴 수 있지 않겠냐고.
곱씹어보니 그렇다.
2025년의 나는 마음과 몸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
돈 때문에도 무진장 힘들었다.
그래서 차라리 단순노동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4대 보험도 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게
더 좋은 선택 아닐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 은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내게 물으셨다.
“네가 진짜 큰 가치를 두는 게 뭐냐?”라고.
하지만 생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생계조차
책임져주지 못한다면 선택지는 결국 두 가지다.
생계를 먼저 챙기거나,
혹은 힘들더라도 생계는 다른 일로 책임지며
내가 의미 있다고 믿는 일을 병행하거나.
그런데 만약,
힘들어도 꾸역꾸역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고
그 일의 가치가 크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면
그 일에 집중해서 만들어가는 게,
먼 미래를 보더라도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다.
나는 생각만 해도 가슴 뛰고,
동시에 나를 괴롭히는
이놈의 예술과 예술교육을
결국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