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_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

by 루아 Rua

난 원래 안 하는 것이나

못하는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안 하는 것이라면

담배, 마약, 법에 위반되는 행동 들…


못하는 것이라면

수영,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두 번이나 있어서 아직도 물이 무섭다.


그리고 생간 먹기.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나는 못하는 것이 꽤 많아졌다.


굴과 꼬막.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으로

세 번이나 죽다 살아난 뒤로는

쳐다도 못 본다.


알레르기로 인한… 술도 그렇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밀가루와 글루텐.

이건 2년 전 일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소화불량과 대장 트러블로

뭘 먹어도 위아래가 뒤집히는 날들이 이어졌다.


두통은 기본이었고,

온몸 피부에 트러블이 올라와

피딱지가 앉을 때까지 긁어야 멈췄다 싶으면,

또 다른 곳이 시작됐다.

그렇게 한 달.

체중은 7~8kg이 빠졌다.


임신했던 두 번의 해를 제외하면,

중학교 2학년 때 체중으로

쭉 살아온 나였기에 가족들은 심각하게 걱정했다.


결국 나는 ‘셀리악병’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진단을 받았다.


유전자에 글루텐을 해독하는

기능 자체가 없는 병이란다.


그걸 모르고 밀가루 러버로

나는 40년 넘게 빵과 면을

거의 매일 먹으며 살았다.


과민성대장증후군,

손가락에 늘 있던 주부습진 같은 수포,

햇볕 알레르기, 홍조,

얼굴에 나면 종기처럼 아프고

크게 자라다 아무것도 터지지 않은 채

몇 주를 버티다 사라지고,

또 다른 곳에 생기던 그 모든 증상들.


전부 셀리악병 때문이었다.


소장의 융털이 서서히 훼손되면

결국 독소를 해독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는단다.


평균 수명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 우 쒸.


진짜 죽을 뻔한 거다.


밀가루, 보리, 호밀, 글루텐이

들어간 음식을 끊은 지

두 달쯤 지나자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둘 사라지는 증상들.


지금은 음식에 글루텐이 섞여 있으면

하루쯤 뒤에 몸의 반응으로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힝.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밀가루를 안 먹는다지만,

나는 살기 위해 못 먹는다.


처음엔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스트레스는 몇 배로 커졌고,

성질은 사냥개처럼 날이 섰다.

빵을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진심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르기도 했다.


생각보다 우리가 모르게 음식의 첨가물에

밀가루가 너무 많은 음식에 들어가 있어

영양성분표를 확인하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은 다르다.


안 먹는 건,

먹을 수 있는데 참는 거라 더 괴롭고


못 먹는 건,

쥐에게 쥐약 같은 존재라 그냥 생존의 문제다.


그래서 다행히도 1년쯤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에 살아 주식이 쌀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먹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은

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지,

약간은… 알 것 같다.


왜 꼭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깨달았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이렇게 살 수 있어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


둘 다 자제력의 문제 같지만,


목숨이 걸려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태도는 이렇게 다르다.


그 차이를 앞에 두고

나의 부족한 자제력에

피식,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