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결핍의 이야기 따듯한 겨울로 끝내는 이 스토리를 주목하자.
영화를 보는 행위는 수동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보기만 하면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굳이 관객으로서 능동적인 행동이 있다면, 내가 영화를 볼 때 유심히 보는 것을 몇개 꼽아보고자 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가(흥행과는 개의치 않는 스토리 전개). 감독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났는가. 배우들의 연기와 몰입력, 각각의 인물이 입은 옷차림과 성격이 얼마나 매치되는가. 계절은 언제인가. 결말은 과정과 잘 어우러졌나 등을 고려하게 된다.
캐롤이랑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이 모든 것이 알맞게 맞아떨어졌다. 아, 하나를 더하자면 배경음악. 너무나 고급진 음악감독의 취향.
내가 느꼈던 관전 포인트는 바로 결핍.
캐롤이 느꼈던 것은 사랑에 대한 결핍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이 아니다. 그녀의 정체성과 관련된 그 결핍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충분한 사랑을 주면 줄수록 그녀는 더욱 더 결핍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결핍말이다.
그리고 다른 여주인공 테레즈의 결핍이다. 그녀가 말하는 대사의 모든 부분은 수동적이다. 좋아요? 네. 어떻게 생각해요? 괜찮아요.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도 모두 다 좋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알려고 하지 않는 수동적인 인물, 자존감의 결핍이다.
캐롤이 테레즈에게 끌림을 느낀 이유는 모성애적인 면이라고 생각했다. 대사중에 캐롤이 테레즈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라는 표현을 쓴다. 어머니가 딸에게 말하듯 다정하고 안정감있는 그 한마디. 실제 캐롤의 딸과 불안한 상태에 놓인 그녀를 채워주는 인물이 테레즈가 아니었을까.
캐롤은 시대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50년대에 흔하지 않은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힐 줄 아는 여자이다. 테레즈의 결핍을 채워주는 부분이다. 테레즈는 우유부단한 자신의 모습과 언제나 당당하고 우아한 말투를 뽑아내는 캐롤을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캐롤의 결말은 결핍의 완성으로 끝이 난다. 캐롤은 완전한 자기인식을 테레즈를 통해 깨닫는다. 그리고 남편의 비열한 복수에도 자신을 부인하지 않기로 한다. 테레즈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 인물이 된다. 캐롤과 관계가 진전될수록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게 된다. 이후 캐롤처럼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알게 되고 선택하게 된다.
캐롤이 시사하는 바가 동성애에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캐롤과 테레즈가 주고받는 대사는 모두 다 주옥같은 말들이다. 그것이 사랑을 노래하는 것도, 단순히 감정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놓여진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선택하는 두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ps 아, 그리고 주인공 둘의 의상도 또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각각의 톤에 맞는 빨강과 초록등이 의상들, 뿐만 아니라 배경에도 적극 사용되고 있다. 특히나 테레즈의 의상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라 느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