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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achyoo Aug 03. 2015

토마토

짧은 채소 이야기1





그녀는 토마토를 기르는 것을 마치 자신이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사랑을 자라는 토마토 앞에서는 당연하게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에 굉장히 흡족해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 무리해서 조그맣게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새로 맞이한 마당은 그녀의 마음 한칸만큼 작았지만, 토마토를 기를만큼은 충분했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보며, 그녀는 이름모를 사람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익은 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않았다.

며칠 째, 떨어질 것 같은 얼굴들을 그녀는 그대로 두었다. 다행히 비가 오지않아 그런대로 지내던 터였다.

아침에 일어난 그녀가 토마토를 확인하러 마당으로 나왔을 때, 그녀는 빨갛게 익은 열매들이 없어진 걸 알았다. 그녀는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덜 떨어진 표정으로 줄기 밑을 살펴보았지만, 열매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는 침착해야했다. 보기보다 하찮은 이 토마토에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 보는 느낌을 받은 냥 그녀는 그대로 얼어버린 발을 애써 태연한 척, 옮기기에 바빴다.

집에 들어와 그녀는 생각했다. 고양이가 물고갔을까, 어떤 이가 술에 취해 화분을 발로 찼다가 멀쩡히 올려놓았는데 토마토만 떨어져 어디로 데구르르 굴러갔을까.

그녀가 이토록 기르던 토마토에 집착을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토마토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이어주는 고마운 채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배밭을 일구어 장녀, 차녀를 대학까지 보냈다. 그리고 막내인 그녀가 16살 때, 평생 일만 해오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 후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후에 선택의 여지없이 과수원에 일손을 도우며 지냈다.
그리고 6년 뒤, 그녀는 과수원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였다. 그녀가 25살인 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과수원 일손을 놓고 있던 장마철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는 눅눅해진 마룻바닥에 그녀를 앉혀놓고 시커멓게 거칠어진 손에 오래도록 들고있었는지 꾸깃해지고 뜨뜬해진 돈뭉치를 그녀의 손에 얹으셨다.

막내딸 고운 손, 하야진 손이 못난 애비를 만나 점점 애비손만치 쩍쩍 갈라지니 배가 튼실히 익어갈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하였다. 배에 살이 올라 부풀고 무게에 못 이겨 나무 줄기가 땅으로 굽어질 때, 애비 마음도 그따라 땅으로 솟구쳤다 하였다.

눅눅하고 퀴퀴한 돈뭉치를 받아든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아버지에게 화를 내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 과수원 팔아봤자 얼마 푼돈이나 나올 것이고 누구에게나 맡긴다 해봤자 아버지 성격에 고것 고스란히 손을 놓을 거나며, 버럭 화를 내다가 울음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1년 뒤, 그녀의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그녀가 혼자 맡아 과수원 일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말 고대로 그녀는 아버지께서 평소 잘 지내오던 마을회관의 이씨 아저씨를 만나 밭 맡길 이를 부탁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퀴퀴한 돈뭉치로 서울로 상경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서울로 보내고자했던데는 무작정이 아니었다. 내사 모를것 같냐며 남몰래 꿈꿔왔던 꿈, 큰 물에서 배워야한다며, 마룻바닥에 앉혀놓고 잠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씀했던 아버지였다.

병세가 악화된 중에서도 평생을 바지런하던 아버지였기에 병실에 얼마 있지 못하고 아버지는 시골로 다시 돌아오셨다. 새삼 먼저 전화 한통 없던 그녀의 아버지, 그녀가 서울로 이사온지 3개월 후,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전화가 울렸다. 주소를 알려달라면서. 그 이후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집에 토마토를 보내왔다. 그녀가 아픈 몸으로 무슨 농사를 또 짓냐 한사코 내치는데도 누워있는 것이 내 병 더 키우는 것이라며, 집에 홀로 있는 것도 심심하여 텃밭이나 조그맣게 일군것이라고 장맛비가 더 쏟아지면 먹을 것도 못먹게 된다며 거친 글씨로 주소를 또박 쓰는 아버지가 눈에 선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토마토를 홀로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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