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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미티 Mar 11. 2022

달리기만 하던 체대생이, 스타트업에 간 이유

체대생, 스타트업에 가다-1 (부제 : 비전공자여, 도전하라)


나는 체육을 전공한 체대생이다.


초등학교 때 슬쩍 발을 들인 육상부 소속의 신분은 바통 터치하듯 매년 이어지며 대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나의 중요 소속이 되었다. 친구들과 노는 게 즐거워 시작했던 육상부 활동이(나에겐 CA시간과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 운(?) 좋게 체육 고등학교로 스카우트를 가게 되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이라기보다 기숙생활을 하는 엘리트 선수로서의 역할이 내 일상의 전부가 되었다. 학교 수업은 정규 교육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커리큘럼이었고, 50분 수업 중 15분만 수업을 한 뒤 모두 꿀잠에 들어갔다.(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 선생님은 나와 친구들의 적극적인 수업 태도를 보고 '체고에 와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여름 방학이면 하계 훈련을, 겨울 방학이면 동계 훈련을 이어나갔다. 가끔 연락했던 중학교 친구들은 10시쯤 되는 시간에 모두 야자를 한다며 불평을 했지만, 나는 기숙사 사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야자가 아닌 소등 시간을 맞이하며 불평을 했다. 그리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새벽 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런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은 3가지뿐이었다.   


(선택에는 언제나 실력이 필요하다..)

1) 프로팀이 실업팀에 가거나 (하지만 그 정도 실력이 없었다)

2) 스카우트 제의가 온 대학교에 가거나(스카우트 제의에 대한 선택권도 없었다)

3) 아니면 일반 대학교를 가거나(...절대 수능을 잘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스카우트 제의가 온 대학교에 가서 교직 이수 자격증을 취득하여 체육 교사가 되겠다'라는 목표로 2번을 선택하였다. 미디어에서 본 대학 새내기의 풋풋한 대학생활 적응기를 꿈꿨지만, 입학도 하기 전 동계 훈련을 시작하였다. 학기가 시작해도 상황은 비슷했다. 내가 선택한 강의의 첫 OT에 들어가 처음 보는 교수님에게 '학교 이름을 걸고 전국 육상 대회에 출전하게 되어 중간고사는 못 볼 듯합니다.'라고 말해야 했다. 전공 교수님들은 불타는 눈빛으로 '다녀오게!'라고 말해주셨지만, 다른 교수님들은 '그럴 거면 왜 내 수업을 신청했나!?'라며 호통을 치셨다. 이러한 상황에도 훈련에 간 나를 위해 필기를 알뜰히 챙겨주는 동기들이 있었다. 그 덕에 나는 과에서 5명만 주는 교직이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전국체전을 참가하며 육상선수 신분을 마무리하였다. 졸업 후 내가 할 일은 오직 임용고시 공부뿐이었다. 하지만 교생실습과 교육학 공부를 할 때 작게 피어 나온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게 맞나?’라는 의문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안 하던 공부를 하면 자신에 대한 의심을 꽃피우는(?) 시기가 있다고 하지만, 나의 질문을 ‘내가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닌 ‘이걸 하면 내가 행복할까?’였다. 분명 이 책상 앞, 교실 밖 세상엔 더 많은 일이 있고, 실제로 벌어지는 중인 거 같은데 교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주는 삶의 만족은 무엇일까 깊이 고민하였다. 그리고 마음 먹었다. '임용 고시 한 번은 보고, 마무리 하자!' 그리고 1년 만에 나는 무작정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용산에 있는 청년창업센터의 문을 두들긴 건,
단순히 호기심


당시 나는 일본계 멀티 스포츠 샵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딛으며 네이버에서 다운로드하였던 자기소개서 양식에는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본 내가 채울 수 있는 게 별로(아예) 없었다. 단순히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생각으로 지원한 멀티 스포츠 샵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사람들이 좋고, 뭐든 새롭게 느껴져 즐겁게 일을 했다. 하지만 성장은 없었다. 스스로도 그게 답답했던지 1도 못하는 영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며 일하던 곳을 그만 두었다.


그러던 중 무한도전을 보던 주말에, 나는 특이한 공고를 만났다. 당시 멋진 이미지와 타이포로 다이어트 자극 명언을 전달하는 ‘다이어트 노트’라는 페이스북 계정에서 채용공고가 떴다. 처음 마주한 회사의 직무는 ‘콘텐츠 큐레이터’였다. (한참을 ‘큐레이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네이버에 검색해 봤지만, 미술관 업무 외 무슨 일을 하는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콘텐츠 큐레이터>

✅ 건강, 다이어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분

✅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있는 분

✅ 친구들에게 센스 있다는 소리를 들은 분

등…



8년 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콘텐츠 에디터와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여 소개하는 역할을 찾는 내용이었다. 맨 처음엔 뭐지..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 이상한 자신감이 울컥 올라와 지원서 작성을 클릭했다. 구글 폼으로 이런저런 나의 생각을 적어 내려갔다. 재밌어 보이는 마음에 열심히 썼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소파에 앉은 내 앞에는 무한도전이 방영 중이었기에 사실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뒤, 다이어트 노트에서 문자가 왔다. ‘서류에 합격하였으니 만날 날짜를 정해서 알려달라’는. 신나는 마음에 가능한 날짜를 전달하였다. 면접을 가기 전 내가 한 일은, 무슨 옷을 입고 갈지만 대략적으로 정한 것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빈손으로 면접장을 두들겼다. 그 두들김이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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