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무물 | 열 번째 이야기
지난 주말, 꼭 각본에 있었던 것처럼 몇 주 내내 제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길티 플레저 음식을 먹는 바로 그 순간! 키티언니를 만났어요. 사당역 수많은 식당 중 한 곳에서 우연처럼 만나다니, 정말 드라마 같은 타이밍이었어요.
모임의 이름은 '절매니'에요.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어서 ‘독일 여행'을 함께 계획하고 있었어요. 여가서 맥주나 실컷 마시고 오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져 버렸었죠.
이번 모임은 고기+소주 조합이 절실했어요. 스페인에 다녀와서인지, 프로젝트가 빡빡하게 돌아가서인지 소주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고기를 굽고 소맥을 마시던 타이밍에! 키티언니가 보이는 거 있죠. 정말 친구분과 가시다가 침착하게 (마스크를 썼지만 목소리와 말투가 들리는 거 같았어요) '잠시만.' 하고 인사를 하러 오는 모습.
술이 얼큰하게 들어가서인지 더더더 반갑고 인사만 하기 괜히 아쉽더라고요. 찐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돌아왔는데 친구가 물었어요. 어떤 분이냐고.
그런데 제 대답에 제가 울컥해져서(술 탓이겠죠?) 이번 소소무물에 꼭 남겨야지 했어요.
제 대답은 "지금의 일하는 나를 만든 분"이었어요. 분-명 오그라들어하겠지만(어쩔 수 없습니다)
메일 쓰는 법, 회의하는 법, 팀장으로 일하는 법, 똑똑하게 일하는 법, 기획하는 법,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법(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매일 올리라는 금 같은 조언이었죠) 등등
그래서 저한테 키티언니는 동료 이상의 선배. 선배를 넘은 언니 같은 존재예요.
이 정도로 어제의 깜짝 만남에 대한 감상평과 길티 플레저 음식을 소개드리고ㅋㅋㅋㅋㅋㅋㅋㅋ
콘텐츠는 저한테는 '자신의 것을 찾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거 같아요.
- 아트 디렉터이자 자신만의 작업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차인철님
- 젊은 목수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삶을 온전히 즐기듯 모이는 김비님
- 에디터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꽃을 만지게 된 히피 플로리스트 김영신님
-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표현하는 걸 해내고야 마는 이찬혁!
등이 요즘 저의 관심사고 그들을 보며 질투와 해이한 제 모습에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기도 해요.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누워있으면 안 되는데 등의 비교를 하면서요.
하지만 그들 덕에 침대에서 일어나 뭐라도 하려고 하죠. 생각보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가 재미없어서 인스타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게 대부분이에요. 좋은 시리즈가 있으면 꼭 추천해 주세요.
키티언니의 길티 플레저 카테고리도 궁금한걸요?
Ditto! 만날 사람은 만난다더니...! 우주의 기운이 저를 이끌었나봅니다. 그날, 하필이면, 가려고 했던 고깃집이 문을 닫았어요. 휴일도 아니고, 업종을 바꾼다고 영업을 중단한 겁니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삼겹살집으로 발을 돌렸는데.. 세상에나 입구쪽에 앉은 혱님, 미티님이 뙇! 하고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반가운 마음에 와다다 달려가 인사했더랬죠.
술김에 감성적으로 한 대답은 넘어가겠습니다ㅋㅋ 그때의 제가 어디 첫사랑 학생회장 오빠처럼 미화된 것 같은데요. 지금이라도 환상을 깨부숴주세요. 한결같이 까이고 서투르고 틀립니다.
미티님의 메일을 보고 두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들었습니다. 하나는 ‘술이라도 즐겨서 다행이다.’, 다른 하나는 ‘당황스럽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콘텐츠를 보는 일이 길티 플레저라뇨. 정의가 저와 매우 다르네요. 그마저도 미티님의 건전한 마음 밭에서 질투와 비교가 피어나는 일이라 그렇겠죠?
요즘 저의 길티 플레저를 말씀드리자면, 야식을 먼저 들 수 있겠습니다. 늦은 오후 먹는 다디단 빵과 과자, 음료도 소소한 길티 플레저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야심한 시간에 먹는 음식들! 배가 아닌 심심한 입을 채워주는 짜거나 맵거나 달거나 세상 모든 맛이 섞인 음식 말이에요. 더부룩한 속에 커피까지 들이켜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옵니다. 다신 안 먹어야지. 다짐이 무색하게 다음날 다시 고민합니다. 먹을까 말까. 안 좋은 줄 알지요. 먹고 나면 후회할 것도 압니다. 그래서 더 간절해집니다.
결국 이기지 못하고 한 입 물고 있으면 지나치게 맛있어요.
그리고 콘텐츠로는 저는 로맨스 장르를 즐겨봅니다. 의외인가요? 더 의외인 걸 말씀드릴게요. 전 로맨스 중에서도 하이틴 로맨스를 좋아합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류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 교복 입고 나오는 첫사랑 이야기의 드라마, 웹툰, 국제 커플 유튜브도 즐겨 봅니다. 사실 그 내용이 그 내용이고, 작품성이나 화제성 있는 작품이 라인업에 넘치는데…! 저는 또 이 풋내 나고 클리셰 투성이 콘텐츠를 클릭합니다. ‘이거 좋아할 나이가 지났는데.. 참…’ 하면서요. 이어폰을 끼고 이내 입술을 슬며시 깨물지요. 저를 겨냥한 하이틴 로맨스가 나오면, 숨어서 몰래 명작을 볼 예정입니다. 생각만 해도 매운 게 당기네요. 달달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