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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nd Turtle May 28. 2022

명상 준비

명상 기록 1일째 (2022.4.21.)

거실과 연결된 선룸으로 나가, 안에서 들려오는 TV 소리를 차단하기 위하여 창문과 방문을 닫는다.  

타이머를 31분으로  맞춰 두고 방석을 편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는다.

몸을 조금씩 움직여 엉덩이와 다리가 방석 위에 편안하게 자리 잡도록 한다.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양손을 배꼽 앞 1~2 cm 정도 앞에서 오른손등을 왼손바닥 위에 살포시 얹고 양손 엄지손가락 끝을 모은다.

몸의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나 뒤쪽으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상체를 조금씩 움직여 조정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다리가 빨리 저려지고 뒤쪽으로 쏠리면 허리에 아픔이 빨리 찾아온다.

중심이 잡히면 편안하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

명상할 준비가 끝났다.

글로 쓰니 많은 것 같지만 여기까지의 과정은 좀 익숙해지면 30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몸이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마음을 준비할 차례.

의식을 숨으로 즉, 들숨과 날숨으로 가져간다.

콧구멍으로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느껴진다.

숨이 들어감에 따라 복부가 팽창해지는 것도 느껴진다.

숨이 나오면 복부도 따라서 수축하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숨을 들이쉴 때 가슴도 팽창하고 어깨도 올라간다.

숨을 내쉴 때 가슴이 수축하고 어깨가 내려가는 움직임도 느껴진다.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몸의 느낌과 움직임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숨의 변화에 따른 몸의 움직임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지금 나의 명상의 목적, 또는 다른 말로 명상 주제가 아니다.

한 때는 멋도 모르고 그랬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몸의 움직임을 꿰뚫어 관찰할 수 있는 집중력이 있지 않다.

지금은 집중력을 키울 때이지, 관찰을 할 때가 아니다.

참고로, 집중력을 키우는 명상을 사마타라 하고 관찰력을 키우는 명상을 위빠사나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처음으로 돌아가,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말해 준 사람은 없지만,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내 맘대로, 언젠가는 진정한 스승을 만날 희망을 품고,

의식을 한곳에 집중하는 훈련, 명상 세계의 언어로는 “공부”를 한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정말 눈먼 거북이 태평양 한가운데 떠 다니는 조그만 판자의 구멍 속으로 머리를 내민 것과 같은 확률의 행운으로 만난,

아나빠나사띠(들숨날숨에 마음 챙기는 방법)를 한다..

아나빠나사띠는 부처가 아들 라훌라의 수행을 돕기 위해 가르쳐준 호흡명상법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많은 자료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몸의 움직임을 안정시킨 후 나는 숨의 들어감과 나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인중,

즉 콧구멍과 윗입술 사이의 오목한 부분에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 거칠었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고 들숨과 날숨의 흐름과 강도가 미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자마자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릴 적 들었던 한여름 땡볕을 뚫고 들려오는 매미소리 같은 소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평상시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이지만 명상하려고 자세를 잡고 앉으면 언제나 들리는 소리이다.

소리를 좀 더 자세하게 들으려고 하다가, 이것은 나의 명상 주제가 아니다는 생각이 일어나, 다시 인중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호흡의 흐름에 집중했다.

그렇게 계속 집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의식은 눈꺼풀의 움직임으로 달려간다.

눈을 감았는데도 뭔가가 보인다.

청중도 없고 스피커도 없고 오로지 사이키델릭 한 빛의 향연만이 스크린위에 그려지는 극장과 같은 공간이 생겨난다.

나의 의식도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빛을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잠시 후, 이것은 나의 명상 주제가 아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다시 인중위의 호흡에 의식을 모은다. 잠시 이어진다.


갑자기, 오늘 오후에 검색했던 커피 그라인더의 그림이 떠 오른다.

“아, 이것을 사, 말어.”라는 오후에 했던 생각이 다시 일어난다.

한참 생각하다, ‘아차, 또 망상이군’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인중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숨의 흐름으로 의식을 가져간다.

잠시 그렇게 호흡을 본다.


금방, 엉덩이 아래로부터 간지러운 느낌이 올라온다.

허리의 뻐근함도 감지된다. 다리 저림의 강도도 더 심해진다.

꼰 다리를 풀고 싶은 욕망도 일어난다.

더 이상 고통을 참으며 앉아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타협의 마음이 생겼다.

다리를 풀었다. 곧게 세운 허리를 풀었다.


시계를 보았다.

31분까지는 아직 5분 31초나 남아있었다.

집중력이 이러하니,

명상은 무슨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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