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ind Turtle May 29. 2022

명상과 지식 공부

명상 기록 7일째

공부모임을 마치고 귀가한  곧바로 31분을 맞춰 놓고 앉았다. 공부모임은 한번 하고 나면 머리가 매우 복잡해진다. 학식이 뛰어나고 인품이 훌륭하신 은퇴한 교수님과 지적 욕구와 수업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중등학교 선생님  분들이 매주  번씩 모이며  년째 이어오고 있는 소중한 모임인데,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나도 최근에 함께 하게 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교육의 내재적 가치였다. 교수님은 “듀이가 말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과 기술은 어떻게 다른가?” “예술과 기술을 분리할  있는가?” “기술이 없는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예술이 없는 기술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들로 늦깎이 학생들을 심문하셨다. 계속되는 질문 공세를 통해 나의 무식이 탄로 나고 멘털이 탈탈 털린 채로 집에 오면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자리를 펴고 앉았다. 전면(인중) 마음을 모은다.


이런 상황에서도 맥주캔 까거나, TV 켜거나 하지 않고, 자리를 펴고 앉는 것만 해도 나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다. 이런 적이 없었다. 아마도 6일째 이어온 명상과 명상 기록의 힘일  같다. 그러나 발전은  여기까지만.


자리를 깔고 앉긴 했지만 집중이 잘 될 리가 없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호흡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모을 수가 없었다. 감은 눈 안에서 빛이 휙휙 날아다니고, 생각은 전광석화처럼 공부모임과 학교와 학생과 가족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아차’하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혼침과 망상을 거듭하다 31분 지났음을 알려주는 알람 소리에 명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명상을 멈추었다.


공부 모임의 공부가 명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지니 번뇌가 쌓이고 번뇌가 쌓이니 집중이 안된다. 집중이 안 되니 희열이 없고 짜증만 있고 지혜는 없고 망상만 있다. 사정이 이런대도 공부 모임을 계속해야 할까? 딜레마다. 교수님은 적어도 10년은 해야,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하셨다. 이제 겨우 한 달 정도를 했으니, 참 갈길도 멀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모임에 참여하느라 명상할 시간이 뺏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공부 모임을 할까? 첫 번째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좋다. 교수님도 좋고 선생님들도 좋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무슨 이야기라도 하고 싶고 나누고 싶어 진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말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평생 한 우물만 파신 최고의 교수님으로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들어볼 수 있고 음미할 수 있다.


최고의 셰프가 요리한 최고의 요리를 먹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훌륭한 요리를 먹는 것과 명상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냥 먹고 싶고 형편이 되면 먹으면 된다. 필요 이상을 먹는 것은 욕심의 발현이므로 명상에 해를 끼칠 수 있지만, 적당히 먹는 것은 명상에 별 지장을 주지 못한다. 공부 모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재미있고 좋으면 하면 된다. 이것이 명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과식이 몸에 해롭고 명상에 해롭듯이, 과한 공부도 역시 마음에 해롭고 명상에도 해롭다. 과하지 않게, 명상에 해로운 영향을 주지 않도록 공부 모임을 유지해야겠다. 공부 모임 때문에 명상을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